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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36]1년 중 가장 긴 밤의 기록...동짓날 '팥죽'

[푸드투데이 = 조성윤기자] 신라시대, 유난히도 어둡고 긴 겨울 동짓날의 밤. 성실하지만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없는 선비 A씨는 재물을 모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날 밤도 잠을 못이루고 뒤척이고 있었다. 그러던 중 밖에 인기척에 밖을 나갔더니 얼굴이 희미하게 보이는 과객이 하룻밤만 신세를 질 수 있겠냐는 부탁을 했다.

 

A씨는 순간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애처로운 마음이 들어 그를 자신의 집에 머물게 했다. 다음날 새벽 과객은 A씨에게 "내년에 벼를 심는다면 풍년이 돼 큰 부자가 될 수 있다"면서 "일 년마다 약속한 날인 동지에 찾아오겠다"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이후로 과객은 해마다 동지에 찾아와 풍년이 될 만한 농작물의 종류를 알려주었고 과객이 권한 농작물은 큰 재물을 모을정도의 부를 주었다. 하지만 A씨는 재물이 모일수록 과객의 방문이 두려웠다. 그는 늘 한밤중에 찾아와서는 날이 새기 전 닭이 울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A씨의 건강이 악화되자 불안감이 더해졌다.

 

병색이 너무나 심해지던 어느 날, A씨는 절을 찾아 스님에게 그동안의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면서 해결 방법을 물었다. 스님은 "과객에게 싫어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고 "싫어하는 것을 집안에 놓으면 오지 않을 것"이라는 답을 들었다. 

A씨는 스님의 조언대로 과객에게 질문을 하자 "가장 싫고 무서운 것은 백마의 피"라는 답이 돌아왔다. 다음해에 A씨는 백마를 잡아 자신의 집악 구석구석 백마의 피를 뿌렸더니 그동안 살갑게 굴었던 과객이 놀랍게도 요괴의 형상으로 변해 A씨에게 저주를 퍼부으며 도망갔다. 그리고 이 일이 일어난 후 A씨의 건강은 다시 좋아졌다.

 

그러나 해마다 동짓날이면 과객이 찾아올텐데 그때마다 백마를 잡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다시 스님을 찾은 A씨는 스님에게 방도를 묻자 스님은 "살생은 나쁜 것이니 백마의 피와 빛깔이 비슷한 팥물을 쑤어 집에 뿌리면 된다"고 말했다. 

 

동지(冬至). 밤이 가장 길고 낮이 짧은 날이다. 이 날은 일출과 일몰 간격은 9시간 줄어드는데 동지가 지나면 밤은 짧아지고 낮이 길어진다. 동짓날 팥죽을 끊이는 유래는 여러가지 설이 존재한다.

 

『동국세시기』에 따르면 옛날 공공씨(共工氏)의 아들이 동짓날에 죽어 전염병을 일으키는 역신(疫神)이 됐는데 생전에 붉은 팥을 무서워했기 때문에 붙은 팥죽을 쑤어 귀신을 물리친다는 이야기가 기록돼있다.

 

그렇게 액운을 물리친다는 의미로 팥죽은 동지고사를 지내고 각 방과 마루, 광, 헛간, 우물, 장독대에 한 그릇씩 놓았다. 또, 들고 다니며 대문이나 벽에 뿌리면 나쁜 귀신을 쫓고 재앙을 면할 수 있다고 믿었다.

팥의 붉은 색이 양의 기운이기 때문에 잡귀와 음기 등 나쁜 기운을 몰아낸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특히, 동지는 밤이 길기 때문에 음기가 높아서 팥죽으로 몸을 따뜻하게 데우고 양기를 보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팥은 부종을 가라앉히고 염증을 없애주는 해독의 효과가 있는 작물이기 때문에 액운을 물리친다는 믿음이 설득적으로 들리기도 한다.

 

각 사찰에서는 팥죽을 끓여 공양을 올리고 기도를 한다. 한 해를 잘 보낸 것에 대한 감사와 새해를 맞이하는 의미가 클 것이다.

 

팥죽을 만들고 찹쌀로 단자를 만들어 넣는데, 단자는 새알만큼 작은 크기로 빚기 때문에 새알심이라고 불렀다. 알은 생명의 탄생을 뜻한다. 동짓날 자신의 나이 숫자대로 새알심을 먹어야 한 살을 먹게 되는 이유가 비롯된 이유다. 

 

동지는 어둠이 가장 긴 까닭에 선인들에게는 추위와 배고픔을 동반한 두려운 밤이었다. 밤이 지속되면서 다시는 태양이 떠오르지 않을 것 같았기 떄문이다.

 

코로나19가 지구를 집어삼킨지 2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그 어느 해보다 외롭고 힘든 '동지'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어둠과 추위를 상징하는 '동지'의 시간이 지나면 빛과 따스함이 오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