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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트로 드라마로 보는 식생활의 변화] (3)전원일기-경양식

[푸드투데이 = 조성윤기자] <편집자 주> 각박한 일상에 지쳐가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90년대 드라마가 여러 채널에서 부활하고 있다. 그 중 '전원일기'는 매니아층이 생길정도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방송된 전원일기는 농촌사회의 이면과 가족애를 섬세하게 그린 작품으로 각광받았다. '양촌리'라는 동네에서 손꼽히는 대가족으로 꼽히는 김회장의 가족을 주축으로 이웃 간의 일상을 이야기 하는 이 드라마는 유독 '음식'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많다. 23년이라는 세월을 담은 이 드라마를 보면 우리의 식생활도 어떻게 변했는지 알 수 있다.

Episode
양촌리 부녀회장은 추수의 하이라이트인 쌀 수매를 앞두고 있다. 부녀회장은 쌀 수매장으로 가는 남편에게 수매한 금액을 술값으로 쓰지 말고 모두 가져오길 당부한다. 그리고 냄비세트를 자랑하는 섭이 엄마에게 그 돈으로 애들 교육보험이나 들어놓으라며 핀잔을 줘서 기분을 상하게 한다.

하교한 아들 종기는 내일 학교에서 전시회에서 특선을 차지했다며 방문을 요청하고, 마땅히 입고 갈 옷이 없었던 부녀회장은 섭이 엄마의 숄을 빌리려고 하지만 냄비세트로 무안을 준 그녀는 남편과 읍내의 경양식집에서 먹은 돈까스 소스가 묻어서 못 빌려준다고 심통을 부린다.

집에와서 입고갈 옷도 마땅치 않고 자신도 돈까스가 먹고싶다고 한탄하는 부녀회장의 남편은 쌀을 수매한 돈으로 읍내의 경양식집에서 외식을 하자고 제안한다.

툰 칼질을 하면서도 허겁지겁 먹는 아내에게 맥주 한 잔을 권하면서 "맛있게 먹는 모습만 봐도 마른 논에 물 들어 가는 것 같다"며 가족들을 흐뭇하게 바라본다.

 

경양식은 1980~1990년대에 방영되거나 재현한 드라마 등에서는 특별한 날 부모님이 자녀를 데리고 가거나 남녀의 데이트 장면에서 자주 등장한다. 그 시절은 그만큼 특별한 메뉴였다. 주로 오므라이스와 카레라이스, 하이라이스, 돈가스, 햄버그 스테이크 등이 주를 이뤘는데 돈가스 전문점이 생기기 전까지 돈가스는 인기가 많은 경양식의 메뉴였다. 돈까스의 어원은 일본어에 있으므로, 영어 표현을 하자면 포크커틀릿(pork cutlet)이다.

경양식집에서 판매되는 돈가스는 지금처럼 분식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그랗고 넙적한 돈가스와 소량의 마카로니, 감자나 케첩과 마요네즈가 드레싱인 양배추 샐러드가 곁들여졌다.

 

특히, 돈가스와 햄버그 스테이크를 비롯한 고기메뉴들을 썰지 않은 덩어리 채 소스를 얹어서 나왔다. 그것이 경양식집의 아이덴티티로 자리잡으면서 양식을 먹을 때 "칼질하러 간다"는 말을 하기도 했었다.

한국에서는 1925년 경성역사 준공과 더불어 역사 내 식당으로 개점한 '그릴'이 한국 최초의 경양식당으로 추정된다. 그릴은 해방 후 대한민국 철도청이 운영을 맡았고 경양식이 고급 외식메뉴로 인기를 끌던 7.80년대에는 서울역뿐만 아니라 다른 역에도 분점을내고, 프라자호텔에 경영권을 넘겼다고 한다.

 

하지만 패밀리 레스토랑 등 다양한 외식메뉴가 생겨나고 외환 위기와 맞물리자 모두 폐점하고 서울역 그릴만 남게 되었다. 하지만 서울역의 그릴은 명동의 수 많은 경양식집들의 오픈에 많은 기여를 했다.

1983년 '명동돈가스'는 처음으로 정통 일본식 돈가스를 선보였다. 그렇게 돈가스 전문집이 생겨나면서 경양식과 돈가스가 분리됐다. 90년대 명동만큼이나 핫플레이스였던 압구정로데오에서도 1984년 오픈한 '델리'가 돈가스와 커리를 접목시킨 새로운 형태로 경양식의 변화를 가져왔다. 

 

잠실에서 손꼽히는 경양식 스타일 돈가스를 파는 노포  '돈가스의 집'도 1984년 오픈했다.

 

90년대 중.후반 도산공원을 중심으로 일본식 돈가스 전문점이 성행하면서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하는 경양식집은 촌스러운 곳이 됐다. 진화된 일식 돈가스는 일식 나무 젓가락을 쓰기 위해서 미리 다 썰어진 후 나오고 스프 대신 장국이 나오고, 소스도 끼얹어 나오지 않았다. 투박하게 케첩과 마요네즈를 곁들인 양배추 대신 가늘게 채썰은 양배추에 락교와 초생강이 제공됐다.

하지만 이런 음식은  촌스럽고 저런 음식이 세련됐다는 발상자체가 유치한 생각이다. 오늘처럼 봄이 짙어가는 저녁에는 바삭하고 두툼한 일식 돈까스에 시원한 생맥주가 생각난다. 위로 받고 싶거나 친구가 보고싶은 날에는 얇게 저며 넓직한 고기에 한국식 브라운 소스를 넉넉하게 끼얹은 돈가스에 소주 한 잔이 그립다.

 

아내와 자식이 돈가스를 먹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마른 논에 물 들어간다"는 심정으로 행복해했던 그 가장의 마음이 모든 것을 가벼이 여기는 혼돈의 시대인 지금도 그대로였으면, 꼭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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