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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10]어른들의 '탄산음료' 맥주 1편

[푸드투데이 = 조성윤기자]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술은 맥주다. 만드는 비용이 저렴하고 그 과정도 비교적 간편하기 때문이다. 가장 오래된 양조주라고 할 수 있는 맥주는 기원전 3000년전부터 만들기 시작했다.

 

다른 주종과 마찬가지로 맥주의 고향은 수도원이다. 맥주는 수도승들의 영양보충용이였다. 부활절 40일 전인 사순절 기간에 철저한 금식을 해야했던 수도승들은 액체 이외에는 음식을 먹을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사망하는 수도승들이 속출했고 그때부터 맥주를 영양보충용으로 먹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1910년대부터 일본에서 건너온 맥주를 상류층들만 먹을 수 있었다. 1933년 오비맥주와 조선맥주로 시작했다. 조선맥주가 오늘날의 하이트진로다. 일제 강점기였던만큼 오비맥주는 쇼와기린맥주, 하이트진로는 대일본맥주(현 아사히맥주)가 모기업이다.

 

이 시기의 맥주는 귀한 술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번화가에만 소량으로 유통됐다. 해방 후,  당시 한국 맥주는 맥주라는 표현보다는 주로 '삐루(ビール)'라는 일본식 이름으로 불리었다.

 

'삐루'는 일본이 한국에서 철수하고 1948년, 소화기린 맥주는 OB맥주의 전신인 동양 맥주 주식회사로 상호를 변경하면서 '맥주'라는 이름을 찾게됐다. 오비맥주는 6.25전쟁을 거쳐 1952년 5월 22일 정식 민간기업으로 출범하게 된다.

조선 맥주는 크라운 맥주(현 하이트맥주)로 상호가 바뀌게 된다. 오비맥주와 하이트의 경쟁은 이때부터 시작이 된다. 1950년대까지 크라운 맥주는 OB맥주보다 점유율이 높았다.

 

승리의 달콤함을 맛 본 크라운맥주는 대리점 확장이라는 무리수를 둔다. 지나친 욕심을 화를 부르는 법. 무리한 대리점 확장에 크라운 맥주는 부도가 나게된다. 1960년대에는 한일은행의 관리 대상이 되는 굴육을 겪게된다.

 

결국 부산의 대선 발효(현 대선주조)가 인수를 하게 된다. 인수 후 시장 점유율 40%를 차지했다. OB와 크라운은 각각 60%, 40%를 차지하며 양강 구도로 흘러갔다.

OB맥주는 60년대에 들어서서 처음으로 생맥주를 선보인다. 또 홉을 재배하며 맥주의 대중화에 박차를 가하며 유통채널을 확보해나갔다. 1965년에는 처음으로 '맥주 판매 100만 상자'라는 기록을 세우게 된다. 1960년대 가장 인기있는 추석 선물은 맥주였고 맥주의 광고는 콘셉트는 승마와 조정 등 고급 스포츠의 이미지를 덧붙여 상류층의 술이라는 공식을 구축해 나갔다.

 

1970년대에는 막걸리와 소주가 국내 술 소비량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었다. 하지만 1980년대 들어서면서 맥주의 소비량이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특히 1980년대 초반 OB맥주가 생맥주를 생산하면서 'OB베어스'라는 브랜드로 생맥주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하면서 유래없는 호황을 누렸다.

 

1988년 서울올림픽은 맥주가 확대되는 중요한 계기가된다. OB맥주는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의 공식맥주로 지정되면서 황금기를 맞이 했다.

 

1988년 맥주의 출고량은 102만3000㎘에 달했다. 50년 동안 49.9배가 증가하며 국민들이 가장 애호하는 주류로 등극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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