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의 왕인 사자가 무리에서 도태되거나 죽게 되는 것은 이빨이 상해서 그렇다고 한다. 이가 시큰거리고 흔들리고 아프다고 인간처럼 치과를 찾을 수도 없으니 자연히 사냥이나 식사를 제대로 못하게 되면서 쇠약해 진다.
사람들도 나이가 60이 지나게 되면 대부분 치아가 성하지 못하게 된다. 물론 관리를 잘하거나 타고 나기를 튼튼하게 태어난 사람들도 더러 있지만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며 살아온 사람일수록 치아가 온전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요즈음 평균 수명이 80세에서 계속 늘어나는 추세이니 몇 십 년 더 씹어 먹어야 하는 터에 치과의 “임플란트” 기술은 참으로 복음이 아닐 수 없다. 사실 맛있는 음식은 대부분 씹는 것들이고 실제로 씹어야 음식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쭈꾸미도 물론 씹어야 제대로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두부나 계란찜 같이 부드러운 음식이 아니라면 봄에 먹을 수 있는 것들은 대부분 씹어야 하는 것들이다. 봄나물이나 두릅 같은 식물도 씹어야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지만 쭈꾸미나 도다리 회 같은 음식도 씹지 않으면 그 참 맛을 느낄 수 없다.
지난 주말에 무창포에 사는 친구가 쭈꾸미 축제가 열린다고 초대를 해서 다녀왔다. 예전에 가본 적이 있지만 오래 되어서 기억나거나 알아 볼 수가 없을 만큼 달라져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해변가가 음식점과 숙박업소로만 뒤 덮혀 있는 것이 안타까웠다. 이 곳에 멋진 그림을 파는 화랑 같은 것은 하나쯤 없느냐고 물었다가 친구에게 핀잔만 들었다. 누가 여기 와서 그림을 사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멋있는 그림을 파는 화랑들이 자리잡고 장사도 되는 그런 시절이 올 것을 상상도 못해보는 사람들이 안타깝다. 장래성 있는 화가들이 와서 그림을 그리며 살고 판매도 할 수 있도록 지방자치단체에서 공간을 한 두 군데 마련해 주면 새들이 깃들듯이 화가들이 모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하여간 우리는 어시장에서 쭈꾸미를 사서 바로 윗 층에 있는 식당으로 가지고 갔다. 알이 든 것만 골라서 준다고 했다. 밥알 같이 생긴 쭈꾸미의 알은 별 맛이 없지만 감촉이 독특하고 자극이 없어 담백한 맛이 묘한 매력이 있었다. 단지 너무 싱싱하게 살아 있는 쭈꾸미를 끓는 냄비에 넣는 것이 즐겁지가 않았다.
뜨거운 물에 집어 넣으면 몸부림을 치는 것이 아니라 다리를 움츠리는 것이 불쌍하고 애처로워 보이는 것이었다. 아직도 큰 쭈꾸미 두 마리가 남아있는 그릇을 들여다 본 순간 그만 그 쭈꾸미와 눈이 마주치게 되었다. 친구에게 그만 먹자고 하였더니 마침 치아 때문에 많이 먹지 못하는 친구가 좋다고 하여 나머지는 살려 주기로 하였다.
식사를 마치고 비닐 봉투에 쭈구미를 담아 바닷가로 가지고 갔다. 가면서 쭈꾸미들에게 말을 건넸다.
“하느님께서 너희를 먹어도 좋다고 허락하신 바 있어 너희 동료들을 끓여 먹었다마는 특별히 너희들에게 원한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분해하지 말아라. 이제 네가 난 곳으로 돌려 보내니 네 운이 있거든 알을 낳고 잘 살거라. 혹시 네가 너무 지쳐 다시 살 수 없다고 하더라도 네가 난 고향에서 죽을 수 있을 터이니 과히 섭섭해 하지는 말거라.”
나는 앞으로 살아 있는 생물을 내 보는 앞에서 끓이는 음식은 안 먹기로 하였다. 물론 주방에서 요리를 해 나온다면 먹을 수도 있다. 그러나 즐기지는 못할 것 같다. 쭈꾸미의 큰 머리통이 아기들을 닮아서 만은 아니다.
요즈음 연세 드신 분들은 건배 할 때 더 이상 “9988234(99살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2~3일 앓은 뒤 죽자)라고 하지 않는다고 한다. “9988231(99살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2~3일 앓은 뒤 일어나자)라고 한다는 것이다. 하기는 요새처럼 의학과 생명공학이 계속 발전하면 머지않아 100살에 죽으면 일찍 죽었다고 할 때가 올지도 모른다. 잘 먹을 수 있으면서 미리 수명을 단축해 놓을 필요는 없다.
푸드투데이 -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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