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는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는 친구를 유지하는데도 코스트가 들기 때문에 친구의 숫자가 많을수록 자원의 씀씀이가 높아질 것이다. 여기서 자원이라 함은 물론 “시간”과 “돈”을 말한다. 돈과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되는 옛날식 우정이란 요즘에는 가마솥에 장작불로 밥 지어 먹는 집 보기만큼 힘들다.
돈이란 원래 많은 사람이나 적은 사람이나 대부분 빠듯하게 돌아가기 마련이어서 돈이 많은 사람은 많은 대로 적은 사람은 적은 대로 항상 부족하다. 사실 돈의 여유는 있어도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경우가 더 많다.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돈이 있어도 친구가 어려울 때 돈을 선뜻 내 놓게 되지가 않는다.
시간도 빠듯하기는 마찬가지이다. 현대사회에서는 누구나 다 바쁘기 때문이다. 퇴직 등으로 바쁜 일에서 놓여나면 한가해 질 것 같지만 그렇게 되지를 않는다. 그 동안에 덜 바빴던 일들이 차고 올라와 다시 우리를 다시 바쁘게 만든다.
하지만 바쁘다는 것도 사실 생각해보면 마음의 여유와 관련이 있다. 누구나 하루에 자고 먹고 일하는 시간을 빼 놓고 나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시간은 제한 되어 있기 마련이다. 우리 주위를 보면 바쁜 중에도 시간을 내서 할 일 다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바쁘지 않아도 시간을 내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결국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시간이 있어도 친구가 필요할 때 시간을 선뜻 내어주지 못한다. 현대인들은 옛날만큼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 친구를 만들지 못하고 외로워한다.
“친구는 몇 명이 좋은가”라고 질문을 받는다면 한 손의 다섯 손가락만 채울 수 있어도 행복하다고 말 할 것 같다.
사실 진실한 친구가 네 명쯤 있으면 족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들것”의 네 군데 모퉁이를 잡고 우리를 옮겨 주려면 필요한 숫자가 넷이기 때문이다.
이 생각은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에서 힌트를 받았다. 성경에 보면 중풍에 걸린 한 젊은이가 있었는데 친구들을 참 잘 두었던 모양이다.그 당시 병을 잘 고쳐준다고 소문이 난 예수이야기를 듣고 그의 친구 네 명이 그를 고쳐주어 보려고 그리로 데려간다. 그런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 다가갈 수가 없자 예수 계신 곳의 지붕을 뜯고 친구를 들 것에 실은 채로 지붕에서 내려 보냈다. 결국 그 청년은 병이 나아서 친구들과 걸어서 돌아갔다고 한다.
친구들이 중풍에 걸려 병신이 된 한 친구를 고쳐 주려고 극성스럽게 지붕의 기와를 벗겨내고 들 것을 달아 올리고 내리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은 점이 부럽다. 땀 벅벅이 되었겠지만 결국 중풍을 고치게 된 친구의 등을 두드리며 돌아갔을 그 들의 우정 어린 웃음소리가 부럽다.
높은 지위를 지내다가 또는 돈을 많이 벌었다가도 그 지위와 돈을 잃게 되면 친구들마저 우수수 떨어져 나가는 일이 보통이다. 더구나 중풍이라도 걸려 사지라도 마비되면 이젠 저 친구는 별 볼일이 없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거의 모든 친구가 떠나갈 것이다.
이렇게 자신이 비천하게 되거나 가난하게 되고 병고에 신음하게 되더라도 끝까지 우정을 저버리지 않는 친구가 넷이나 있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런데도 대부분의 사람이 이 같이 변함 없는 우정을 갈구하고 그런 우정이 찾아와 주기만 기다릴 뿐 내 쪽에서 만들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내가 먼저 친구를 위해 변함 없는 우정을 줄 생각은 하지 못한다.
특히 요즈음같이 심각한 경제 위기를 맞아 많은 사람들이 펀드 등으로 재산을 잃거나 다니던 직장을 잃게 되었을 때는 누구나 뜻 밖의 어려움에 처할 수도 있다.
이럴 때 나의 아픔을 잠시 접어두고 친구로서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도울 수 있는 한 도와주자. 이렇게 어려운 때야말로 좋은 친구를 만들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이다. 좋은 친구는 마음의 여유만큼 만들 수 있다.
푸드투데이 - 기자
001@foodtoday.or.kr
Copyright @2002 foodtoday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