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쇠고기 협상은 많은 국민에게 실망만 안겨줬다. `혹시' 하고 기대를 걸었으나 `역시'로 끝났다. 미국은 요구사항을 거의 100% 관철했으나 그 대가로 한국이 건진 건 전혀 없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에 돌파구가 마련됐다지만 FTA가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게 아닌 만큼 성과로 내세울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한미 양국은 쇠고기 수입 위생조건 개정 문제를 놓고 며칠 동안 씨름한 끝에 일차로 30개월 미만은 뼈를 포함한 쇠고기 수입을 전면 허용한 뒤 앞으로 미국이 강화된 동물사료 조치를 공포하면 30개월 이상에도 제한을 두지 않는 단계적 수입 확대 방안에 합의했다.
하지만 동물사료 검증 규정이 없는 만큼 국내 쇠고기시장은 미국에 사실상 완전 개방된 셈이다.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해도 우리 정부가 수입 및 검역 중단 조치를 즉각 취할 수 없다는 것도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이번 협상은 어차피 우리에게 어려운 게임이었다. 힘이 부족하고 논리에서 밀린 데다 협상 전략마저 달렸으니 좋은 결과는 애초부터 기대하기 힘들었던 게 사실이다.
세계 117개국이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고 그 중 96개국은 아무 제한도 달지 않는다. 한국도 작년에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조지 부시 미 대통령에게 '광우병위험통제국' 지위 획득을 조건으로 쇠고기 수입 재개를 약속한 바 있다.
위생 문제도 그렇다. 미국 국민 3억 명은 물론이고 미국에 사는 우리 동포 200여만 명과 외교관, 상사원, 그리고 관광객과 여행자들을 포함해 그 누구도 광우병이 무서워 미국산 쇠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얘기는 들어 본 적이 없다.
축산농가와 시민단체들은 협상 결과가 발표되자 '국민건강을 포기한 굴욕적 협상'이라고 일제히 규탄하고 나섰지만 국민을 광우병의 위험으로 몰아넣을 정신 나간 정부가 어디에 있겠는가.
소비자도 생각해야 한다. 미국산 쇠고기를 막기에 앞서 우리 국민이 세계에서 제일 비싼 쇠고기를 먹어야 하는 이유부터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저런 사정을 따져 보면 우리에게 유리한 구석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일방적으로 내주기만 한 협상 결과는 낙제점을 면키 힘들다.
서로 주고받는 게 국가 간 협상이다. 미국이 억지 부리는 것도 한두 가지가 아니므로 협상력에 따라서는 대가를 충분히 챙길 수도 있었을 것이다.
특히 일본, 중국, 홍콩 등 어떤 아시아 국가도 수용하지 않는 수준까지 시장을 열었다면 미국도 상응하는 노력을 보이는 게 도리다. 국민 정서도 주요 고려사항이다.
그런데도 우리 국민은 물론이고 외국인들도 좋아하는 삼계탕과 한우의 대미 수출 검역 완화에 대한 확실한 언질조차 받아내지 못했다니 실망을 금할 길 없다.
정부는 향후 대미 협상에서 대가를 최대한 얻어내야 한다. 당장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에서부터 미국은 `성의'를 보여야 한다. 그게 비자 면제든 무엇이든.
이젠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따른 후유증을 최소화하는 일에 모두가 지혜를 모아야 한다. 우선 직격탄을 맞게 된 한우농가 지원책 마련부터 서둘러야 할 것이다.
한우의 상품 경쟁력을 높이는 한편 원산지 표시제 강화 등을 통해 가짜 한우 유통을 차단해야 한다.
소비자가 비싼 값을 치러도 유통업자들 배만 불리고 축산농가는 계속 허덕이는 전근대적 유통망을 현대화하는 것도 시급한 과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비자가 불안에 떨지 않도록 광우병 특정위험물질(SRM) 통제에 한치의 빈틈도 없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