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가 또다시 주요 현안으로 떠오를 모양이다. 미국이 지난 주말 검역 기술 협의를 제안했고 여러 상황을 검토한 뒤 11~12일에 협상을 갖기로 했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이번 기술 협의에서 양측은 '살코기만, 30개월 미만'으로 묶여 있는 쇠고기 수입 위생 조건을 어떤 방향으로 고칠 것인가를 논의한다. 미국은 나이나 부위를 가리지 말고 모든 쇠고기 상품을 수입하라며 압박하고 있다.
한국은 그러나 광우병 원인 물질인 변형 프리온이 포함될 수 있는 편도, 회장원위부(소장 끝부분), 뇌, 두개골, 척수 등 광우병위험물질(SRM) 7가지와 꼬리, 내장, 사골 등 부산물의 수입을 불허하고 '30개월 미만'이라는 연령 제한도 고수할 방침으로 알려져 있다.
양측의 입장 차이가 크니 협상이 순탄하지 않을 것은 뻔하다. 미국이 강하게 나오는 데에는 국제수역사무국(OIE)이라는 배경이 자리 잡고 있다. 지난 5월 OIE에서 '광우병 위험 통제국' 지위를 부여받은 미국은 OIE 규정대로 하자는 입장이다.
'광우병 위험 통제국'은 원칙적으로 쇠고기 교역에서 나이와 부위에 제한을 받지 않는다는 게 OIE의 권고 지침이다. 편도와 회장원위부는 소의 나이에 관계없이 반드시 빼야 하지만 나이가 30개월 미만이면 뇌, 두개골, 척수 등은 그런 의무도 없다.
지난 4월 노무현 대통령이 조지 부시 대통령과 가진 전화 통화에서 국제 기준과 국내 절차에 맞춰 성실하게 수입 재개 절차를 밟겠다고 밝힌 것도 한국으로서는 적지 않은 부담이다.
비록 구두 약속이기는 하나 양국 정상 간의 대화에서 표명한 정부의 의지를 불과 몇 달 뒤에 가서 모른 척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노 대통령이 "정부는 이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TV 생중계를 통해 국민에게 다짐까지 한 마당이니 더욱 그렇다.
하지만 미국산 쇠고기 수입 조건은 국민의 건강과 직결된 문제이고 한우 사육 농가의 소득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사안인 만큼 조금이라도 소홀히 다뤄서는 안 된다.
어느 협상이나 상대방이 있기 마련이므로 우리 주장만 고집할 수는 없으나 원칙을 갖고 국익을 최대한 추구하는 것은 정부의 당연한 의무다. 그런데도 장관까지 나서서 "협상을 서두르지 않겠다"고 거듭 강조하던 농림부가 당장 이번 주에 협상을 갖기로 갑자기 입장을 선회한 것은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그것도 등뼈가 다시 발견된 지 겨우 1주일 만에 미국의 수출 검역 부실은 따져 보지도 않고 말이다. 미국은 지난 8월 초의 첫 등뼈 발견 당시에도 사고 경위를 해명하기는커녕 수입 검역 중단 조치 바로 다음날 위생 조건에 문제가 있다며 적반하장격으로 나왔다.
그때에는 `우선 해명'을 요구하던 농림부가 이번에는 `전격 수용'으로 돌아선 데 대해 납득할 만한 해명이 있어야 할 것이다.
협상을 마냥 미룰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서두를 일은 아니다. 급한 것은 한국에 더 많이 팔려는 미국이다. 게다가 위생 조건이 개정되면 현재의 검역 중단과 선적 금지 조치에서 자동적으로 벗어나는 만큼 미국이 자꾸 보채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한국으로서는 협상 개시에 앞서 현행 규정 위반에 대한 미국의 해명을 강력하게 요구하는 게 협상의 주도권 장악에도 유리하다는 것쯤은 상식이다.
그런데도 이를 포기했으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을 앞두고 정부가 미국에 너무 끌려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것이다.
정부는 이제부터라도 협상력을 적극 키워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믿고 맡길 마음이 생긴다.
푸드투데이 fenews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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