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투데이 = 황인선기자] 정부가 AI로 만든 ‘가짜 의사·전문가’가 식품·의약품을 권유하는 이른바 ‘AI 가짜 의사 광고’에 칼을 빼 들었다. SNS를 타고 순식간에 퍼지는 딥페이크 건강·의약품 광고를 시장 질서를 무너뜨리는 ‘신종 거래질서 교란 행위’로 규정하고, 생성 단계부터 징벌적 손해배상까지 이어지는 전방위 대책을 가동한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10일 김민석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제7회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관계부처 합동으로 마련한 'AI 등을 활용한 시장 질서 교란 허위·과장광고 대응 방안'을 확정·발표했다. 대책은 ▲AI 허위·과장 광고의 유통 전 사전 방지 ▲유통 시 신속 차단 ▲위법행위자 제재 강화 및 단속역량 확충 등 3대 축으로 구성됐다.
최근 SNS에는 ‘서울대 치과 전문의가 알려주는 두 가지 방법’, ‘S대 피부과 교수의 지루성 두피염 경고’ 등 자극적인 문구와 함께 의사·전문가가 등장하는 건강·의약품 광고 영상이 폭증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실제 의료진이 출연한 광고처럼 보이지만 상당수는 AI가 얼굴·목소리를 합성해 만들어낸 가짜 ‘전문가’다.
정부는 이런 광고가 특히 건강 정보에 취약한 노년층의 구매 결정과 치료 선택을 왜곡시키고, 잘못된 의학 정보를 확산시켜 생명·신체 위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통적인 TV·지면 광고가 아닌 인플루언서·개인 채널을 통해 비공식적으로 유포되는 특성상 확산 속도와 영향력이 훨씬 크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대통령도 지난 10월 국무회의에서 “AI를 악용한 허위·과장광고는 국민경제에 큰 피해를 야기하는 시장 교란행위”라며 “정확한 정보 유통이 담보되지 않으면 시장경제가 무질서해질 수밖에 없다”고 언급, 관계부처에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주문한 바 있다. 이번 대책은 이러한 주문에 대한 정부 차원의 첫 종합 대응 패키지라는 의미를 갖는다.
“AI면 꼭 표시하라”…게시자·플랫폼에 ‘AI 생성물 표시 의무’ 부과
우선 정부는 AI로 만든 사진·영상·음성 콘텐츠를 올리는 사람에게 ‘이 콘텐츠는 AI로 생성·편집한 것’이라는 사실을 반드시 표시하도록 하는 일종의 ‘AI 워터마크 의무화’를 추진한다. 지금은 내년 1월 시행되는 'AI 기본법'에 따라 AI 사업자(개발·이용 사업자)에만 표시 의무가 부과돼 실제 SNS에 광고를 올리는 개인·인플루언서는 규제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앞으로는 포털·SNS·동영상 플랫폼 등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플랫폼)에 대해 ▲AI 생성물 게시자에게 표시 방법을 제공하고 의무를 고지할 책임 ▲이용자가 AI 표시를 임의로 삭제하거나 훼손하지 못하도록 관리할 책임을 부과한다.
AI로 만든 사진·영상임을 알고도 표시를 하지 않거나, 나중에 표시를 지우는 행위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을 통해 과태료 부과 등 제재 대상이 된다. 정부는 내년 1분기까지 관련 개정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AI 사업자에게 이미 부과된 표시 의무가 실효성 있게 작동하도록, 딥페이크 영상·음성 등 AI 생성물의 고지·표시 방식과 콘텐츠 유형별 사례를 담은 ‘AI 생성물 투명성 가이드라인’을 마련한다. 이 가이드라인은 AI 기본법 시행(2026년 1월)에 맞춰 공식 확정될 예정이다.
“24시간 내 심의·긴급 차단”…AI 허위 광고 전용 패스트트랙 가동
두 번째 축은 이미 유통되고 있는 허위·과장 광고를 얼마나 빨리 끊어낼 수 있느냐에 초점이 맞춰졌다. 현재는 식품·의약품 부당광고에 대해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모니터링 후 방송미디어통신심의위원회(방미심위)에 심의를 요청하는 구조인데, 위원 공백이나 회의 일정, 공문 수·발신 등으로 심의에 수 주~수개월이 걸리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정부는 우선 식품·의약품·화장품·의약외품 등 AI 허위·과장 광고가 빈발하는 품목군을 방미심위 ‘서면(전자) 심의’ 대상에 추가하는 법 개정을 추진한다. 몰카 등 성범죄 촬영물에만 적용되던 서면심의 제도를 건강·의약품 부당광고까지 넓혀, 심의 요청 후 24시간 이내에 차단 여부를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이 병행된다.
식약처가 이미 마약류 온라인 광고에 한해 구축한 ‘패스트트랙 심의 신청 시스템’도 식품·의약품·화장품 등으로 확대된다. 기존처럼 공문을 주고받는 대신 심의 신청부터 처리까지 전산으로 연동해 행정 절차 소요 시간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생명·재산 피해 우려가 극도로 높은 경우에는 심의 결과를 기다리지 않고 ‘선 차단·후 심의’ 방식도 도입된다. 식약처, 공정위 등 관계 부처가 특정 광고를 긴급 차단이 필요한 불법 정보로 판단해 방미통위에 요청하면 방미통위가 플랫폼 사업자에게 임시 시정조치를 직접 요구할 수 있도록 '정보통신망법' 개정을 추진한다. 이후 방미심위가 정식 심의를 통해 불법 여부를 확정하면, 위법으로 판단될 경우 차단을 유지하고, 그렇지 않으면 게시물을 원상 복구한다.
정부는 이와 함께 네이버·구글·메타·틱톡 등 주요 플랫폼 사업자와의 협의체를 통해 유명인·전문가 사칭 딥페이크 광고에 대한 자율 모니터링과 사전 차단 시스템을 고도화하고, 이미 도입된 자율규제를 다른 플랫폼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병행 추진하기로 했다.
“가상 인간 숨기면 부당 광고”…징벌적 손배·과징금 상향으로 ‘본때’
세 번째 축은 위법 광고를 만든 사람과 이를 통해 이익을 얻은 사업자에 대한 제재 수위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내용이다.
먼저 공정거래위원회는 AI가 생성한 가상 인간이 제품을 추천하는 광고의 위법성 판단 기준을 명확히 했다. AI 모델이 등장해 제품 효능을 설명하는 광고라도 시청자가 이를 가상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없게 제작한 경우 ‘부당한 표시·광고’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인플루언서가 협찬 사실을 숨기고 제품을 추천하는 이른바 ‘뒷광고’와 마찬가지로, 소비자 기만성이 높다고 본 것이다.
식약처도 식품·건강기능식품·의약품·화장품·의료기기 분야에서 AI가 생성한 의사·전문가가 제품을 추천하는 광고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방향으로 관련 법률 개정을 추진한다. 지금까지는 ‘의사 등 전문가’의 개념이 실제 사람에만 적용되는지, 가상 인간도 포함되는지 해석 여지가 있었지만 앞으로는 AI로 만든 ‘가짜 의사’도 명시적으로 금지 대상에 포함시키겠다는 취지다.
처벌 강도도 대폭 높아진다. 일정 규모 이상의 인플루언서·정보 게재자가 허위·조작 정보임을 알면서도 타인에게 피해를 줄 의도로 정보를 유통한 경우, 실제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배상 책임을 지도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정보통신망법' 개정을 통해 도입된다.
표시·광고법상 허위·과장 광고에 대해 부과하는 과징금 상한도 ‘관련 매출액의 최대 2%’에서 상향 조정하는 방안을 공정위가 별도 입법으로 추진한다.
감시·적발 시스템도 강화된다. 식약처는 온라인 식·의약품 부당광고 적발 건수가 2024년 9만 6천 건을 넘어서는 등 급증 추세인 점을 감안해 AI 기반 모니터링 시스템을 도입해 의심 광고를 자동 탐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한국소비자원 역시 유튜브·SNS 광고 모니터링 조직을 보강해 AI ‘워싱’ 광고, 사기성 투자·도박 광고 등 타 분야 피해도 함께 점검한다는 계획이다.
2026년까지 단계적 법·제도 정비…“AI 시대 시장 질서 새 기준 될 것”
정부는 이번 대책을 단기간 이벤트가 아닌 2026년까지 단계적으로 제도화하는 중장기 과제로 설정했다.
AI 생성물 표시제 도입을 위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은 2026년 1분기까지, 방미심위 서면심의 도입과 방미통위 긴급 시정요청 절차는 각각 2026년 상·하반기 입법을 목표로 추진된다. AI 전문가 추천 광고 금지와 과징금 상향 등은 2026년 상반기 중 관련 법률 개정안을 발의하는 것이 목표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이번 대책은 신기술의 부작용은 최소화하면서도 AI 시대에 맞는 새로운 시장 질서를 세우기 위한 것”이라며 “플랫폼 업계와 소비자 단체, 전문가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법·제도 개선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