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조직에서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문제를 혁신적으로 해결해 가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때로 그것이 참담한 실패로 끝나는 경우가 있더라도 그것이 새로운 성공의 키워드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어떤 시대를 막론하고 이러한 대열의 선봉에 서 있는 대표적인 사람들은 아무래도 예술가들이 아닌가 싶다. 따라서 지금의 대중들보다 한 발 앞서가는 예술인들은 지금 당장 그것이 필요하지 않고 소용되지 않는다고 해서 용도 폐기되어서는 안 된다. 지금 대중들이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해서 미래에도 그러리라는 예단은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모든 대중성에는 충분한 예술성의 가미가 있는 법이다. 다시 말하면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었던 모든 문화 양식에는 일정 정도의 예술성이 반드시 포함되어 있다. 혹간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으나 이는 일시적인 유행에 불과할 따름이다. |
지금 우리 나라에 그런 아파트는 없다. 새로운 편의성과 미적 감각을 지난 주거 형태가 등장하자마자 그것들은 이내 사라졌다. 일반인들의 인식 수준과 눈높이가 한 차원 높아진 것이다.
이런 예에서 볼 수 있듯이 미적 감각, 즉 아름다움이 숨어 있지 않은 것은 대중성을 확보하는 데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이런 아름다움, 지금이 아니라 앞날의 아름다움은 어떻게 가꾸고 만들어 가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이를 위해 앞선 감각에서 움직이는 사람들, 살아 있는 감각을 가지고 끊임없이 예술 행위에 몰두하는 예술가들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런 전위에 서 있는 사람들은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늘상 발목을 잡고 있다. 전위의 문화를 즐기고 그에 따른 만족의 대가를 지불하는 계층의 수가 너무 적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누가 이들을 위해 투자해야 하는가.
우수한 인력이 시장 논리에 휩쓸려 예술이나 기초 학문의 연구보다는 법대나 상대 쪽으로 몰리는 현상은 정부가 나서지 않고는 빠른 시간 내에 바로잡기 어렵다.
하지만 전위 예술을 비롯한 예술 전반에 걸친 지원은 정부의 힘으로는 한계가 있다. 또 자칫하다가는 형평성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고(예술 전반에 걸친 지원의 기준을 정하는 데 문제가 있을 것이다) 자유로운 예술 행위에 대한 지원을 관 주도로 한다는 데도 문제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는 외국의 예를 참조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개인이나 기업에서 재단을 설립하여 예술가들에게 지원하는 방법이 그것이다.
사적인 재단이 예술가들에게 지원하는 것은 일종의 투자적 성격이 있다고 봐야 한다. 지금 당장은 대중성을 획득하기 힘들지만 언젠가는 대중들이 향유할 문화 양식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상품의 형태로 만들어 내는 것 또한 기업의 몫이기도 하다.
진정한 대중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아름다움이, 빼어난 예술성이 바탕이 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기업들이, 경영인들이 먼저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런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들이 주로 당대에는 평가를 받지 못하는 전위에 서 있는 소수의 사람들이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미래의 일들을 지금 어떤 시각으로 보고 대처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