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성하고 맛깔스러운 이탈리아 문화탐방기

  • 등록 2010.05.11 13:3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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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이탈리아 좌익민주당 당수였던 마시모 달레마는 좌파 연립정부 총리직에 오르기 직전 에밀리아 로마냐주에서 "토르텔리니나 만드는 관대한 활동가들로 구성된 좌파에는 미련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유연한 좌파가 나라를 이끌 수 없다"는 뜻으로 이런 말을 했지만, 토르텔리니는 '붉은 에밀리아 로마냐' 사그라(축제)에 등장할 정도로 이 지역 대표 파스타이고 지역 좌파들에게도 저항운동의 상징이 되는 음식이라는 점이 문제였다.

그렇지 않아도 로마 출신인 달레마 전 총리를 향한 시선이 곱지 않았던 에밀리아 로마냐 유권자들이 등을 돌려서인지 달레마 내각은 1년여밖에 가지 못했다.

엘레나 코스튜코비치가 '왜 이탈리아 사람들은 음식 이야기를 좋아할까?'에서 음식에 정치적, 사회적 상징성을 부여하는 이탈리아인들의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사례로 소개한 일화다.

이탈리아 문학 전문가로 움베르토 에코의 책들을 러시아어로 번역한 러시아인 코스튜코비치는 20년 넘게 이탈리아에서 살면서 이탈리아인들은 러시아인과 달리 식탁에서 어떤 화제를 꺼내더라도 마지막에는 음식 이야기로 넘어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이탈리아인들에게 음식이란 생존을 위한 먹을거리를 넘어 인생 본연의 의미와 가치가 담긴 것이라고 풀이하기에 이른다.

저마다 자급자족하며 동등한 위치에서 역사를 쌓아온 도시들이 하나하나 모여 만들어진 나라인 터라 지역마다 특색이 분명하며 그 땅에 뿌리를 내린 지역민들에게 지역 음식은 큰 의미를 지닌다는 것.

"이탈리아 문화에서 어떤 요리법을 전수한다는 것은 자신이 태어난 땅의 기억을 불러온다는 것이고 그 땅에 속한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부의 리조또는 '허심탄회한 요리'로 그려진다. 화덕에서 45분간 쌀을 넣고 끓이면서 쉬지 않고 저어줘야 하므로 이 긴 시간에 주인과 손님들은 대화를 계속하게 되고, 문인들은 쌀 냄비 앞에서 사색한 결과 명작을 낳았다.

남부에서 시작된 피자는 '즐거운 집단 향연의 음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요리사에 따라 다양한 풍미를 낼 수 있는 파스타가 '주부의 기발한 창작에 좌우되는 가정식'으로 여겨지는 것과 대비된다.

"식당에 들어가 피자를 주문하는 순간 식탁에 앉은 사람들은 즐거운 놀이에 초대된다. 피자 주문은 '술래가 세는 숫자'와 같다. 말 게임을 이끄는 사람은 수다스러운 지배인이고, 손님은 거기에 맞춰 하나하나 대응한다."

북쪽 끝 프리울리 베네치아부터 남쪽 끝 시칠리아까지 누비는 저자는 올리브 오일에서는 이탈리아 전역을 결집하는 힘과 위엄을, 어부와 선원, 농부들까지 요리에 달통하고 박식한 모습에서는 뿌리 깊은 민주주의를 찾아낸다.

"이 나라는 아무리 파고들어도 배부르지 않다"고 말할 만큼 이탈리아에 매혹된 저자는 맛깔스러운 필치로 독자들을 구수한 화덕 냄새 나는 식당으로, 싱싱한 채소와 해산물이 가득한 시장으로 이끈다. 그 안에 담긴 지식도, 즐거움도 풍성해 배가 절로 부르다.

랜덤하우스코리아 펴냄 / 엘레나 코스튜코비치 지음 / 김희정 옮김 / 648쪽 / 2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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