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산의 수성(守城)이냐, 프랑스산의 고토(古土) 회복이냐.'
한국과 유럽연합(EU)이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 포도주에 붙는 관세를 철폐하기로 잠정 합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내 포도주 시장에서 '구대륙'으로 불리는 유럽산과 '신세계'인 칠레.미국.호주산 와인 경쟁이 치열해질 전망이다.
26일 농수산물유통공사(aT)와 주류업계에 따르면 국내 수입 와인 시장에서 부동의 1위는 와인 종주국인 프랑스산이었다. aT 농수산물무역정보가 제공하는 1992년 이후 수입 통계를 보면 1993년 한 차례를 빼고 프랑스산 와인이 수입량이나 금액에서 1위를 놓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러다 지난해 지각 변동이 일어났다. 칠레산이 프랑스산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한 것. 수입량 기준으로 칠레산이 6610t으로 가장 많았고 그 뒤가 프랑스(5454t), 스페인(4785t), 미국(3939t), 이탈리아(3506t) 순이었다.
와인 종주국이 체면을 구긴 셈이다. 다만 금액으로는 프랑스(6573만달러)산이 칠레(2971만달러)산을 여전히 크게 앞섰다. 양은 적어도 값비싼 고급이 수입됐다는 얘기다.
전통적으로 수입 와인 시장에서는 유럽산이 강세를 보여왔지만 미국, 호주, 칠레 등 이른바 신세계 지역의 와인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을 앞세워 꾸준히 시장을 공략해왔다.
특히 와인의 대중화와 함께 칠레, 미국산 와인은 국내 시장 점유율을 높여왔다. 칠레산 와인은 2003년까지만 해도 7위에 머물렀지만 이듬해 한.칠레 FTA가 발효되면서 단숨에 3위로 뛰어올랐고, 2007년 2위를 거쳐 지난해엔 1위에 올랐다.
'무관세'라는 날개를 단 칠레산의 공세에 유럽산이 무릎을 꿇은 셈이다.
그 와중에 수입 와인 시장의 규모도 비약적으로 커져 2000년 8053t이었던 수입 와인 물량은 2007년 4배 가까운 3만1810t까지 확대됐다. 다만 2008년엔 전 세계적 경기 침체로 외려 2만8795t으로 다소 줄었다.
한.EU FTA가 잠정 합의된 대로 최종 타결되면 다시 한 번 순위에 변화가 올 가능성이 있다. 프랑스 와인을 필두로 한 유럽산이 '무관세'로 맞불을 놓고 한국 시장에서의 패권 다툼에 나설 것이기 때문이다.
와인업계 관계자는 "미국, 칠레 등의 신세계 와인은 그간 가격 대비 품질이 좋은 제품으로 인식되면서 인기를 누렸다"며 "이번 조치로 구대륙 와인의 가격도 합리적인 수준으로 낮아지면 시장 점유율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푸드투데이 홍오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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