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학생으로 처음 미국에 유학한 이는 윤치호선생이다. 윤치호선생은 애국가 가사를 작사한 분으로 알려져 있는데 미국의 에모리대학에서 수학하였다고 한다. 그 때가 지금부터 120년 전인 1888년이었다.
그 60년 후인 1948년에는 같은 미국에서 공부한 이승만 박사가 대한민국 정부의 대통령이 된다. 미국 유학의 열매가 맺어진 것이다.
이승만박사는 조선조 왕족의 혈통을 이어받은 이로써 어려서부터 한문에 능통하였을 뿐 아니라 미국에 가서도 아주 훌륭한 학생이었다. 당시 수학했던 프린스턴 대학의 총장이었던 ‘우드로 윌슨’이 이승만 박사를 특히 아껴서 여러모로 도움을 주었다고 하는데 그가 바로 나중에 미국 대통령이 된 그 윌슨이다.
이처럼 동, 서 양쪽 문화를 모두 섭렵한 사람이 신생 한국 정부의 초대 대통령이 된 것은 다행한 일이었다 할 수 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때에도 우리는 수많은 유학생을 미국에 보낼 수 있었고, 그들이 공부를 마치고 돌아와서 한국경제의 근대화에 크게 기여한 것은 우리가 다 아는 바이다.
이제 다시 60년이 지나 우리는 미국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은 적은 없어도 국제적인 감각이 풍부한 이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초대 대통령 이래에 직업 군인이나 직업 정치인이 대통령을 해 왔기 때문에 국제적인 비즈니스의 배경을 가진 분이 대통령이 된 것은 처음이다. 따라서 60년마다 환갑이라 하여 새로운 시작을 염원하는 동양적 관점에서 볼 때 의미 있는 일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제 세계 모든 나라가 경제를 앞세우고 몰두하는 때이므로 새 정부가 그들과 경쟁하며 앞서서 경제를 잘 해 나가려면 역설적이게도 이명박 대통령의 장점인 경제뿐 아니라 그의 정치력이 더 필요한 것이다.
영국병을 고치고 높은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에서 망해가는 영국을 구했던 ‘대처’수상이 경제전문가는 아니었다. ‘대처’는 전공도 화학이었고 국회의원을 20년 하고 수상이 되어 1979년부터 1990년까지 재임한 정치가이다. 그런데도 ‘대처’는 영국경제를 망쳐온 것이 석탄 노조라고 간파하였고 석탄노조와 대결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그 뒤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노조는 원래 잘 조직되어 있는데다 표와 연결되어 있어서 우선 영국의 양대 정당인 보수당과 노동당부터 굴복시켜야 정부가 석탄 노조와 싸울 수 있었다.
‘대처’수상이 싸움을 준비 해 온 이야기는 흥미진진하지만 여기서 다루지는 않겠다. 다만 싸움은 1년간의 기간을 끌고 우여곡절 끝에 석탄 노조를 굴복시켰다.
‘대처’수상의 치밀한 사전 준비와 거듭되는 위기에 굴하지 않고 투혼을 발휘한 용기가 가져온 결과였다.
경제를 잘 아는 대통령은 강점이자 약점일 수도 있다. 강점은 경제를 잘 알기 때문에 정부가 해야 할 일과 나가야 할 길을 잘 알고 이해를 빨리 한다는 점이다.
약점은 과거 몇 년간 경제가 정치를 낮추어 보고 능멸해 온 사회적 분위기와 환경 때문에 정치적인 힘을 발휘하기가 쉽지 않은 터에 그 힘을 사용하는데 서툴다는 점이다. 따라서 추진력이 문제 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민영화를 해야 하는 공기업 선정 작업 같은 것만 봐도 그렇다. 정부가 어떻게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로부터 정권을 찾아 오고 싶은 야당 지지자들의 노력은 계속 존재할 것이며 10년 이상 구축해 온 기반 위에 더욱 가열화 될 것이다.
이들과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국가를 발전시키려면 차별화된 비젼과 목표를 명확히 하면서 용기있게 전략을 실천해 나가는 것뿐이다. 촛불시위 같은 의사 표시에 흔들리는 정부가 되어서는 아무것도 못 한다.
푸드투데이 -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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