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투데이 = 황인선기자] 식품의약품안전처(처장 오유경)가 식품공전 전면 개편을 추진하면서 김치·장류·벌꿀 등 전통식품 분류가 통폐합 위기에 놓였다. 소비자 편의라는 명분 아래 진행되는 이번 개정에 대해 업계와 시민사회는 “전통식품 지우기”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농림축산식품부 등 농정 당국은 사실상 방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식약처는 절임류(김치류)를 농산가공식품류로 통폐합하고, 벌꿀류를 당류로 흡수하는 등 식품 분류체계 개편에 착수했다. 20개가 넘는 대분류와 300여 개의 식품유형을 간소화해 소비자 편의를 높이겠다는 입장이지만 업계와 학계에서는 “소비자 알권리와 한식 전통문화 훼손”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근 논란이 됐던 장류 대분류 폐지안에 이어 한식메주·한식간장·한식된장을 각각 개량메주·양조간장·된장과 통합하려는 개편안, 그리고 이번에 김치류·떡류·두부류·절임류까지 흡수 통합하려는 계획이 알려지며 논란은 확산되고 있다.
특히 분쇄가공육제품 식품유형 폐지 논의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완화와 맞물려 안전성 논란을 키우고 있다. 여기에 유전자변형농산물(GMO) 완전표시제 시행이 예고된 상황에서 콩기름·옥수수기름·유채유 등의 식품유형 자체를 없애려는 개편안까지 포함되면서 시민사회 반발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송옥주 의원(경기 화성시갑)이 식품안전정보원으로부터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식약처는 올해 3월 식품공전 전면 개정을 위한 연구용역을 의뢰해 24개 식품군, 102개 식품종, 290개 식품유형을 손보는 대대적인 작업을 진행 중이다.
식품안전정보원은 원재료 및 산업적 분류를 기준으로 대분류 체계를 재편하고 있다. 이로 인해 떡류·절임류·김치류·장류, 벌꿀류·화분가공품류·유가공품류·육류가공식품류 등 농축산업과 밀접한 식품군이 변경 또는 폐지될 가능성이 높다.
자문단 회의 자료에 따르면 벌꿀류는 당류로 통합되고, 화분가공품류는 기타식품류에 흡수된다. 식육간편조리세트는 즉석식품류로 이동하며, 유가공식품류·육류가공식품류·알가공식품류는 ‘축산가공식품류’로 통합하는 방안이 논의 중이다.
중분류에서는 우유류·가공우유·산양유가 ‘액상우유’로 통합되고, 강화우유·유산균첨가우유 등 국산 원유 사용 제품은 ‘가공유’로 묶인다. 발효음료류 또한 삭제될 가능성이 커 국산 원유의 구분 표시가 더 어려워질 전망이다.
‘식육가공품류 및 포장육’으로 분류돼 있던 대분류(9개 중분류·16개 식품유형)는 ‘육가공식품류’로 단순화돼 6개 중분류, 12개 식품유형만 남게 된다. 또한 곤충가공식품과 로열젤리류 중분류는 ‘기타 동물성가공식품류’로 흡수된다.
분유류에 포함돼 있던 ‘탈지분유’ 식품유형은 삭제될 예정이며, 기존의 갈비가공품과 분쇄가공육제품 유형은 ‘양념육’으로 통합된다. 계란가공품의 경우 전란액·전란분은 ‘전란액 또는 전란분’으로, 난황·난백 제품 역시 ‘난황(분)·난백(분)’ 형태로 단일화된다.
또한 조미식품류 내 ‘고춧가루’와 ‘실고추’ 식품유형은 삭제 대상에 포함됐다.
식용유지류는 31개 유형에서 17개로 축소된다. 참기름과 들기름은 남기되, 콩기름·옥수수기름·채종유(유채유)는 ‘식물성유지’로 통합된다. 하지만 이는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GMO 완전표시제’ 도입 취지와 배치된다.
권대영 전 한국식품연구원장은 “김치를 절임류에 포함한 것도 문제인데 절임류 자체를 없애겠다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며 “김치는 한식의 핵심이자 독자적 분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송옥주 의원은 “윤석열 정부에서 시작된 식약처의 개편이 장류·김치 등 전통식품과 GMO·쇠고기 수입조건 등 민감 품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소비자 식별이 불가능해질 만큼 식품유형을 없애는 것은 국민 공분을 부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농식품부는 전통식품을 보호하기 위한 전담부서를 신설하고, 식약처는 시민사회와 충분히 협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