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변형식품(GMO) 완전표시제' 도입을 놓고 국내 식품업계는 혼란에 빠져 있다. 국회 일부 정당과 시민단체는 소비자의 '알 권리'를 위해 적극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는가 하면 식품관련 부처와 국내 기업들은 정부가 과학적인 안전성 확보에도 불구하고 표시제 확대는 막대한 사회적 비용부담은 물론 실효성도 떨어진다는 입장이다.
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식품이란 특정 목적을 위해 유전자를 인위적으로 조작하여 개발한 생물체를 식품으로 이용한 것을 말한다. 이는 자연적인 교배나 돌연변이와 달리 유전자 조작기술을 통해 외래 유전자를 삽입하거나 기존 유전자를 제거·변형하여 병충해 저항성, 저장성, 영양 강화 등의 특정 형질을 갖도록 한 것으로 해충 방지 옥수수, 제초제 저항 콩, 비타민A 강화 쌀 등을 들 수 있다.
GMO기술은 전통 육종 방식의 한계를 극복하고, 식량 생산성을 높이며, 새로운 기능성 식품을 개발하기 위한 기술로 가뭄·염분 내성 강화, 수확량 증가, 영양소 강화, 장기 저장 가능성 증대, 병충해 방지 등 인간의 필요에 따라 보다 정밀하고 빠르게 작물의 형질을 조절할 수 있는 점에서 생명공학의 중요한 업적임에 틀림이 없다. 또한 GMO는 세계 인구증가에 따른 식량 문제 해결, 병해충・제초제 저항성을 통한 농업생산성 증가, 기아 및 영양 결핍 해소, 농약사용량 감소로 토양·수질 오염 감소, 의약·바이오산업 발전에 기여하는 등 인류 사회에 대한 공헌도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다.
GMO식품에 대해 정부가 안전성확보를 위해 제반 조치를 취하고 있으나 현재 당면하고 있는 반대여론 또한 만만치가 않다. 인체 건강에 대한 우려로 알레르기 유발 가능성, 장기 섭취 시 안전성 논란, 야생종과의 유전자 교환 시 생태계 우려, 씨앗 특허 및 생명자원의 다국적 기업 독점구조, GMO 포함 여부를 알기 위한‘완전표시제’ 요구 증가, 확인되지 않은 괴담으로 사회적 불신조성 등이 있기 때문이다.
GMO식품 표시제에 대한 국제기구의 입장은 비교적 소극적이다. CODEX는 GMO식품에 대한 기본원칙으로 GMO표시제는 국가 자율 영역이고 CODEX 차원의 ‘의무적 표시 기준’은 설정하지 않고 있으며, GMO식품이 기존 식품과 ‘본질적으로 실질적 동등성’이 있다면, 별도 표시가 필요하지 않다고 본다. 소비자의 선택권 보장 차원에서 국가별로 표시제 도입은 가능하나 Non-GMO제품과 GMO제품 간 차별로 이어지는 표현은 지양해야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WHO(세계보건기구)의 기본입장은 GMO식품이 현재까지는 안전하다는 과학적 근거에 기반하고 있어 WHO는 표시제를 권고하지 않고 있다. FAO(유엔식량농업기구)의 기본입장은 GMO기술이 식량 안보, 생산성 향상, 기후변화 대응에 기여할 수 있다고 평가하고, 표시 여부는 국가의 정책 선택사항으로 인정되나 표시제가 무역장벽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과학적 근거와 투명한 기준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일본, 미국, EU의 경우를 살펴보면 일본은 소비자 보호와 산업의 균형을 맞추는 중간 수준의 부분적 의무표시제를 유지하고, 미국은 과학적 안전성을 중심으로 생명공학 식품표시제로 비교적 온건한 표시제를 운영하며, EU는 완전표시제를 택하고 있다. 일본은 5% 이상 GMO원재료가 사용되었을 경우 표시가 의무적이며, 정제된 DNA 또는 단백질이 남지 않은 식품은 표시가 제외된다. 미국은 생명공학 작물 목록에 포함된 콩, 옥수수, 사탕무 등 품목을 대상으로 GMO가 아닌 생명공학식품 간접표시제를 택하고 있다. 광우병으로 혼난 EU는 GMO 또는 GMO유래 성분에 대해 표시를 의무화하고, DNA나 단백질 잔존 여부와 무관하게 원료 기준으로 표시하는 등 가장 강력한 GMO표시제를 시행하고 있다.
현재 추진 중인 우리나라의 GMO식품 표시제 개정안을 보면 표시대상의 확대로 DNA나 단백질이 남아 있지 않아도 GMO원료 사용 시에는 표시를 의무화하고, GMO 사료로 사육된 축산물도 표시 대상에 포함을 검토하고 있으며, 소비자가 쉽게 인식할 수 있도록“GMO원재료 사용”표시, 글자 크기・ 위치 등의 명확한 라벨링 체계를 도입하고, Non-GMO표시를 남용하지 못하도록 인증 기준, 추적관리 체계를 마련하며, 표시위반 시 과태료와 행정처분 강화 및 고의 누락 시 형상처벌 대상 등의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한국의 GMO식품 표시제는 국민 여론, 국제 흐름, 식품 산업의 현실을 모두 고려할 때 앞으로는 균형 있고 단계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본다. 특히, CODEX 등 국제기구의 기준과 일본, 미국, EU 등의 운영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바람직한 GMO식품 표시제의 발전방향을 제시한다면 첫째, 산업계의 부담 우려를 고려해서 전면 도입 대신 단계적으로 접근한다. 우선, Non-GMO 표시 기준부터 정비하여 소비자 혼란을 해소하고, 추적관리 가능한 제품군부터 표시제를 확대하며, 사료-축산물 단계의 GMO사용 여부 추적관리 시범사업을 실시하고, 일본과 같이 5% 이상 GMO를 포함하는 일부 식품군부터 단계적으로 적용해 보는 것이다.
둘째, 표시 방식의 다양화 및 정보 투명성을 제고한다. 미국과 같이 직접 표시 외에도 QR코드, 전화 안내 등 정보 접근 방식을 다양화하며, “유전자변형 원료 사용 여부는 QR코드 참조” 등의 소비자 친화적 표시체계 구축이 필요하다.
셋째, Non-GMO 인증제도를 통합 및 공공화한다. 현재 민간 주도로 혼재된 Non-GMO 인증체계를 정비하고, 국가 차원의 표준 인증 기준 마련 및 공신력 있는 인증기관을 운영하며, Non-GMO 표시 남용 방지를 위한 법적 기준을 명확히 한다.
넷째, 국제 기준 및 통상마찰에 대한 대응력을 확보한다. WTO/SPS, FTA 등 통상 규범에 저촉되지 않도록 과학적 안전성 자료와 소비자 보호 목적 논거를 병행하고, EU 사례처럼 국제 규범과 국내 소비자 보호 목적을 조화시키는 정책 설계도 필요하다.
앞서 제시된 GMO표시제 사례를 종합해 볼 때 한국은 국제기준과 국내실정을 감안하여 균형 있는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 GMO표시제 강화는 소비자의 알 권리와 선택권을 높이지만, 식품산업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따라서 GMO표시제의 확대는 단계적 표시제 및 디지털 표시 방식을 도입하고, Non-GMO인증 정비를 통해 소비자 신뢰와 산업 부담 최소화를 기하는 가운데 추진함이 타당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