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투데이 = 황인선기자] 학교 우유급식은 1980년대 본격화된 이후 40여 년간 성장기 학생의 균형 잡힌 발달을 돕고, 국산 우유의 안정적 소비처 역할을 해왔다. 낙농업계에는 지속적인 수요 기반을 제공하며, 학생들에게는 ‘영양 공급원’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 제도였다.
하지만 2025년 현재, 학교 우유급식은 존립 위기에 직면해 있다. 학생 수 감소와 백색 우유 기피 현상으로 학교 우유급식 참여율는 매년 감소하고 있으며, 취약계층 지원 방식은 낙인효과 논란을 낳고 있다. 국내 우유 생산량과 자급률은 동반 하락하며 낙농 기반도 흔들리고 있다.
학교 우유급식이 직면한 현실은 수치로도 명확히 드러난다. 학교 우유급식 참여율은 2017년 51.5%에서 2024년 31%로 떨어지며 절반 수준으로 급감했다. 국내 우유 생산량도 2003년 237만 톤에서 지난해 193만 톤으로 줄었고, 국산 우유 자급률은 2014년 60.7%에서 지난해 45.8%로 하락했다.
낙농가의 수익성도 악화됐다. 젖소 한 마리당 연간 순이익은 2016년 284만 원에서 2023년 173만 원으로 줄었고, 사료값과 에너지 비용 상승으로 생산비는 리터당 1,023원까지 치솟았다.
결국 학생들은 우유를 외면하고, 농가는 생산 기반을 지키지 못하는 ‘이중의 위기’가 현실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5일 국회박물관 대강당에서 열린 ‘학생 건강과 시대 변화에 맞는 학교 우유 지원체계 개선’ 정책 토론회에서는 학교 우유급식 참여율 급감과 낙농 기반 약화라는 현 상황이 수치로 확인되면서 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백승아 의원은 “학생 수 감소와 백색 우유 기피, 취약계층 낙인효과 등 복합 요인으로 제도가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고 있다”며 “보편적 공급·선별 지원·바우처 등 다양한 모델을 검토해 재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해수위 소속 송옥주 의원은 “우리나라 우유의 주된 소비처인 학교 우유급식이 위축되면서 국내 낙농 산업도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며 “학교급식은 해당 품목의 생산 기반을 지탱하는 중요한 버팀목”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윤석열 정부가 중단한 우유 바우처 사업을 조속히 재개해야 한다”며 “무상급식 식단에 우유를 포함시켜 청소년들에게 안정적으로 공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현미 회장 “낙인효과·행정 이원화 해소…학생 건강권 반영해야”
현장 교사 “취약계층 위화감·잔반 문제…보편 지원·식습관 교육 필요”
토론회에서는 신현미 전국영양교사회 회장(교동초등학교 영양교사)이 발제자로 나서 ‘학생 건강과 지속가능한 학교우유지원을 위한 방안’을 주제로 발표했다.
신현미 전국영양교사회 회장은 현재 학교 우유 지원 실시 체계 및 현황에 이어 무상우유 지원 대상자 신분 노출, 학생 건강권 반영 미흡, 계약 및 집행 이원화, 개인정보가 노출되는 행정 시스템 등 무상우유 지원 실시에 따른 문제점과 현재는 중단된 학교 우유바우처 사업의 성과 등에 대해 설명했다.
이어 △법적보호대상자 무상우유 지원 지자체로 일원화, △학생 기호도 및 선택권 반영으로 학생 건강권 확보, △전과정 전산 시스템 구축으로 학생 인권 보호, △영양·식생활교육 등 학기 중 유상우유 운영 개선 등 제도적·교육적 개선 방안을 제시하며 발표를 마무리했다.
실제 현장의 목소리도 이어졌다. 김동수 한국초등교장협의회 부회장은 “취약계층만 무상 지원할 경우 위화감이 조성될 수 있다”며 “보편적 지원이나 바우처 방식이 현실적 대안”이라고 말했다.
서아진 서울대치초 교사는 “우유를 마시지 않으면 손해라는 보호자들의 인식과 그로 인한 학생과의 갈등, 신청률 미달성, 위생·안전관리의 현실적 어려움이 존재한다”며 “우유급식의 본래 목적에 맞게 점심 급식에서 다양하고 질 좋은 유제품을 제공해 균형 잡힌 영양 섭취를 도모해야 한다”고 말했다.
농식품부·교육청 “제도 개선 필요성 공감…바우처·업무 이관 두고 온도차”
현장의 제도 개선을 두고 정부와 교육청, 지자체 모두 필요성에는 공감했지만, 업무 이관·바우처 도입·공급 방식 개선을 둘러싼 이해관계와 실행 방안에서는 뚜렷한 온도차를 보였다.
박일수 농림축산식품부 축산경영과 사무관은 “그간 학교와 지자체 협의를 통해 행정업무 경감 및 개선사항을 반영해 왔으며, 앞으로도 의견수렴을 거쳐 제도를 지속적으로 보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농식품부는 현재 학교 우유급식 제도 개선 연구용역(11월 완료 예정)을 진행 중이며, 결과를 토대로 관계자 협의 후 지침 개정을 추진할 방침이다.
이진성 서울시교육청 보건안전진흥원 과장은 “법적 보호대상자의 무상 우유지원 업무를 지자체로 이관할 경우 행정 효율성은 높아지지만 학교의 협조도 필요하다”며 “지자체의 복지 시스템을 활용하면 방학 중 가정배달과 지원 관리가 가능하지만 학기 중에는 여전히 학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무상우유지원에 대해 바우처 방식으로 일부 동의하며, 특히 중·고등학교의 낮은 참여율과 방학 중 지원 공백을 보완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서울은 초등·특수학교에서 무상급식을 이미 실시하고 있어 현행 시스템 유지를 선호한다”고 부연했다.
김현옥 경기도교육청 학교급식보건과 사무관은 “현장에서는 신분 노출, 낙인효과, 검수·정산의 이원화 문제 등 다양한 민원이 발생하고 있다”며 “수혜자가 직접 선택·소비할 수 있는 공급 체계로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바우처 활용과 지원시스템 개선을 통해 학생 선택권과 편의성을 확대하고, 학교 행정업무도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창수 강원특별자치도청 농정국 축산과 팀장은 “학교급식 식단에 우유와 유제품을 포함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라며 학생 신분 노출과 영양교사 업무 부담을 해소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바우처 사업에 대해서는 “행정복지센터 방문 신청과 신분 노출 위험으로 사업 추진율이 낮다”며 “강원도 내 바우처 시범지역 참여율이 59.7%에 그친 반면, 학교급식 방식은 82.3%”라고 설명했다. 또 “업무 이관을 통한 가정배송은 멸균유 선호로 영양가치가 낮아지고, 시군별 담당자 부담이 커질 수 있다”며 “단가 문제로 유상급식 학생들의 수혜가 중단될 우려도 있다”고 지적했다.
낙농·유가공계 “학교급식과 우유급식 통합, 무상급식 확대해야”
낙농·유가공 업계는 학교 우유급식의 참여율 하락과 소비 기반 약화가 장기적으로 낙농 산업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며 제도 개선과 법적 기반 강화를 촉구했다.
한지태 한국낙농육우협회 정책기획상무는 “우리나라는 선진국과 달리 학교 우유급식을 학교급식과 분리해 운영하고 있다”며 “EU, 미국, 일본 등은 우유급식을 학교급식에 통합해 모든 학생에게 보편적으로 제공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학교급식을 하지 않는 학교의 학생은 우유급식 기회 자체를 박탈당하고 있으며, 이는 성장기 주요 칼슘 급원 섭취 부족으로 ‘체격은 크지만 체력은 약한 청소년’ 문제를 심화시키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학교급식과 우유급식 통합을 위한 법제화가 필요하다”며 “학교급식법 개정을 통해 메뉴에 우유를 포함시키고, 낙농진흥법 개정으로 농식품부와 교육부가 협의·관리하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오경환 한국유가공협회 전무는 “유가공업계는 지난 40여 년 동안 시중보다 낮은 가격으로 학교에 우유를 공급하며 사각지대를 줄이고, 강화우유·저지방우유 등 건강지향형 제품 개발과 품질 개선, 위생관리 고도화를 위해 노력해왔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그럼에도 학교 우유급식률은 코로나19 이후 급감해 2024년 30.8%에 불과하다”며 “이는 아동·청소년의 영양 불균형과 우유 소비 기반 약화를 초래할 수밖에 없는 심각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와 협력해 흰 우유 외에도 발효유·가공유·치즈 등 다양한 제품을 주 2회 공급할 수 있도록 개선한 만큼 앞으로도 학생 기호와 현장 요구를 반영해 제품을 다양화하고 품질 향상과 단가 관리를 동시에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송명길 서울우유협동조합 급식전략팀장은 “서울시는 2011년부터 서울시와 교육청이 협력해 무상급식 안에 우유급식을 포함해 전체 초등학생에게 지원해 왔으며, 전라남도도 지난 5년간 모든 초등학생에게 무상 우유급식을 실시해 참여율이 80%를 넘는다”며 “이는 전국 평균(약 30%)보다 2.5배 이상 높은 수치”라고 소개했다.
그는 “보편적 무상급식은 학생의 소득 수준과 관계없이 균등한 영양 공급을 가능하게 하는 교육 복지 정책”이라며 “학교 우유급식 확대는 음용률 제고와 건강 증진은 물론, 낙농 산업 안정화와 낙인효과 해소 등 다방면의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40년간 학생 건강과 낙농 기반을 지탱해온 학교 우유급식은 이제 변화의 갈림길에 서 있다. 건강권 보장과 산업 안정이라는 두 과제를 조화롭게 풀어낼 수 있을지가 향후 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좌우할 전망이다.
한편, 이번 토론회는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백승아 의원(더불어민주당),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송옥주 의원(경기 화성갑, 더불어민주당)이 주최하고, 대한영양사협회, 대한영양사협회 전국영양교사회(회장 신현미, 이하 전국영양교사회), 전국영양교사노동조합 주관으로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