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푸드투데이 = 황인선기자] 떡국은 한국의 전통 음식으로, 특히 떡국을 먹으면 한 살을 더 먹는다는 의미가 있어 설날에 먹는 대표적인 음식이다. 설날에 떡국을 먹음으로써 새로운 해를 맞이하고 나이를 더하는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떡의 흰색은 깨끗함과 새로운 출발을, 둥근 모양은 화합과 풍요를 상징한다. 떡국은 한국의 역사적, 문화적 변화와 함께 발전해 왔다. 고대 맑은 국물에 떡을 넣어 먹는 단순한 형태에서 만두 등을 넣거나 잡곡 떡을 활용하는 등 개인의 취향을 반영한 떡국까지 시대와 함께 변화하며 오늘날의 모습에 이르게 됐다. 떡국의 변천사를 살펴본다.<편집자주>
고대 - 떡의 기원
떡은 삼국시대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떡은 주로 곡물을 찌거나 찧어서 만든 단순한 형태였으며 이 과정에서 쌀은 단순한 곡물이 아닌 신성한 식품으로 여겼다. 떡은 제사나 의식에서 필수적인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신라시대에는 떡이 귀족과 왕실에서 중요한 음식으로 중요한 음식으로 자리잡았다. 주로 제사 음식으로 사용됐고, 불교 전파와 함께 신에게 바치는 떡이 발전했다.
고려시대에도 떡은 중요한 음식으로 여겨졌으며, 왕실과 귀족들은 정교하고 화려한 떡을 즐겼다.
조선시대 - 떡국의 정착
떡의 발전은 조선시대에 이뤄졌다. 떡이 대중화되고, 다양한 종류와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이 시기는 왕실은 물론 서민들에게도 사랑받는 음식어었다.
조선시대에 떡국은 설날의 상징적인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조선 후기 세시풍속을 담은 '동국세시기', '열양세시기', '경도잡지' 등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하얀 탕이라고 해서 '백탕'(白湯), 떡을 넣고 끓였다고 해 '병탕'(餠湯) 등으로 불렸다. 이 시기에는 떡국이 유교적 의례와 결합돼 가족과 조상에게 존경을 표하는 음식으로 여겨졌다.
떡국에 사용되는 떡은 주로 흰 가래떡으로, 국물은 소고기, 꿩, 닭 등을 사용해 만들었으며 각 지역의 재료와 전통에 따라 다양하게 변형됐다.
근현대 - 떡국의 대중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떡국은 재료와 조리 방법에 있어 변화를 겪었다. 국물을 주로 소고기 육수나 멸치 육수를 사용했으며 간장이나 소금으로 간을 맞췄다.
현대 - 다양성과 창의성
현대에는 떡국이 지역적 특색과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양하게 변형되고 있다.
전통적인 소고기 떡국 외에 닭 육수, 해물 육수, 채소 육수를 사용하는 등 다양한 국물이 등장했다. 떡의 형태도 원래의 가래떡에서 벗어나 둥글게 썬 떡, 색깔 있는 떡, 잡곡 떡 등으로 확장됐다.
떡국에 만두를 추가한 떡만두국도 대중적인 메뉴로 자리 잡았다.
지역별 떡국 - 개성만점 문화 담아
각 지역의 문화와 자연환경에 따라 재료와 조리 방법이 다양하게 전해져 왔다.
서울.경기 지역은 가장 일반적인 형태의 떡국으로 소고기 육수를 기본으로 하고 간장으로 간을 맞춘다. 떡은 가래떡을 얇게 썰어 사용하며 고명으로는 소고기 볶음, 달걀 지단, 김가루, 파 등이 올라간다.
경상도는 두부와 소고기를 볶은 꾸미라는 고명을 풍성하게 올려 화려하면서도 풍미가 깊은 특징이 있다. 소고기나 닭고기 육수를 사용하며 간은 주로 소금으로 맞춘다. 일부 지역에서는 고춧가루를 넣어 약간 매콤한 맛을 더하기도 한다.
전라도는 간장에 조린 닭고기로 육수를 낸 '닭장 떡국'을 먹었다. 전라도의 풍부한 음식 문화를 반영한 떡국으로, 깊은 감칠맛과 풍성한 고명이 조화를 이룬다.
충청도는 소박하면서도 담백한 맛이 특징이다. 익반죽한 쌀가루를 가래떡처럼 만들어 육수에 넣어 끓였으며 여기에 미역과 들깨즙을 넣기도 한다.
강원도에서는 떡국에 보리나 잡곡을 섞거나 만두를 넣어 먹었다. 맑고 깔끔한 국물에 떡과 만두를 함께 넣어 푸짐하게 즐겼다. 특히 꿩고기 육수를 사용하거나 대체로 닭고기나 소고기로 육수를 만들어 자연의 맛을 살리는 것이 특징이다.
해산물이 풍부한 제주도에서는 소고기 대신 전복, 소라, 해산물 육수를 사용해 떡국을 만든다. 국물을 담백하면서도 해산물 특유의 감칠맛이 난다. 고명으로는 제주산 김이나 해조류를 곁이들이는 경우가 많다.
특히 겨울철 별미 해조류인 모자반을 넣은 '몸 떡국'이 유명하다. 모자반 외에도 옥돔이나 미역 등을 떡국에 넣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