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 복지 위한 일관된 삶... 추진력 리더십 두루 갖춰
보건복지부 장관 입각 발표 당일 김화중 장관(인터뷰 당시 국회 민주당 의원)을 인터뷰 했다. 정치적 소신이나 정치지도자로서의 목표 등 국회의원이나 장관으로서의 생각보다는 걸어온 길과 왜 그같은 길을 걷고 있는가 등 한 인간으로서의 모습이 궁금했다. 인터뷰에 앞서 김 장관과 관련해 인터넷에 올라온 글 들을 둘러봤다. '그늘지고 소외받는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 '보건의료복지를 위해 힘든 길을 가는 의원' '보건복지 정책의 나아갈 길을 정확히 짚고 있는 사람'... 등 다양하다. 다른 곳을 들어가 보니 '추진력과 개혁성을 바탕으로 하는 강한 리더십 소유자'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정치인' '초선같지 않은 초선의원'이라는 내용의 글이 올라와있다. |
![]() | 김화중 장관(사진)의 모든 에너지는 '보건의료 복지'에 모아진다. 굳이 김 장관 본인이나 주변사람들의 입을 빌리지 않더라도 '보건의료 복지'를 향한 김 장관의 남다른 애정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인터뷰에 앞서 기자가 보좌관을 통해 전해받은 김 장관의 프로필에 나열된 학력과 경력의 총 행수는 44행. 이중 보건의료복지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행수가 무려 27개를 차지, 전체의 61%에 이른다. 나머지도 대부분 보건의료복지와 간접적 관계에 있는 산업안전 기획단이나 여성관련 협단체 등으로 채워져 있다. 대학에서 부터 의정활동에 이르기 까지 초지일관 우리나라의 보건의료복지 수준을 근본적으로 향상시키기 위해 일해왔다는 방증이다. |
어릴적 경제적 고통받아
김 장관은 충남 논산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갑부집에서 태어났지만 성장과정이 편치만은 않았다. 훈련소 납품을 통해 거부 소리를 듣던 부친의 일탈(?) 행동으로 인해 순식간에 집안이 거덜난 것.
상처가 컸다. 단순히 경제적 곤궁에서 비롯된 상처가 아니었다.
김 장관은 "물론 경제적 고통도 컸지요. 하지만 정말 가슴이 아팠던 것은 딸이 의기소침해 용기를 잃을까 염려돼, 항상 곁에서 감싸주고 용기를 북돋워 주시려는 어머니가 되레 너무 안돼보였다"고 말했다. 이어 "패물을 팔아 공부를 시키려는 어머니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학교를 그만둘까 생각도 해봤다"고 회상했다.
딸을 향한 어머니의 깊은 사랑이 오히려 자신에게는 애틋한 아픔으로 다가왔던 것.
경제적 어려움은 쉽게 극복되지 않았지만 정신적 기둥인 어머니의 존재는 김 장관을 공부 속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강경여중을 졸업하고 지역에서는 최우등생들만이 간다는 대전여고에 입학,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과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확인했다.
김 장관은 "고등학교 시절에도 공부는 잘했지만 주변에서 알아주지 않아 어린 마음에 못내 섭섭했어요. 대전여중 출신 친구들이 내가 대전지역이 아닌 지역출신이라는 이유로 왕따 시켰다고나 할까요"라며 "고3때 교장실 옆 벽에 전교 50위권 학생들의 명단을 붙였는데 10등 안에 들어있는 제 이름을 본 후 비로서 친구들이 아는 척을 해주더군요"라며 웃었다.
서울대 간호학과에 입학한 것도 결국 경제적 문제해결과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다는 마음을 서둘러 실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김 장관은 "다른 학교나 다른 과를 권하는 선생님들의 말씀을 물리치고 간호학과에 진학한 것은 졸업후 직장을 구하기가 쉽다는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지요"라고 설명했다. 국가적으로 어려웠던 시절, 여성이 직장을 얻는 것이 녹록치 않았던 점을 고려한 선택이었다는 설명이다.
김 장관의 캠퍼스 생활은 공부, 사회참여, 경제문제 해결이라는 세가지 숙제를 동시에 풀어가는 치열한 시간으로 채워졌다.
대학시절 평점 2.3(3.0만점, 환산시 A-수준)은 향후 대학원 진학과 해외유학을 뒷받침 하는 기초가 됐다. 아울러 높은 학점을 통해 경제적 문제 해결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장학금까지 받게 됐으니 일거양득인 셈.
방학기간에는 농촌을 찾아가 계몽운동에 나서는 한편 대학근처에 세워진 천막학교 등 야학을 찾아가 어려운 여건으로 인해 진학을 포기한 청소년들을 독려했다.
어려운 경제적 형편 등으로 진학을 포기한 청소년들을 보면 "검정고시를 거쳐서라도 꼭 진학해요"라며 희망의 고리를 연결시켜 주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빈민 소외계층 남 같지 않아
김 장관의 보건의료복지에 대한 구체적 관심은 농민활동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돈이 없다는 이유로 치료자체를 포기한채 끙끙 앓거나 생명을 잃는 경우를 직접 경험한 것.
김 장관은 "남의 일 같지 않았어요. 돈이 없어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현실이 내 자신의 일 처럼 너무 억울했거든요"라며 당시를 기억했다.
선진국들의 보건의료복지 정책에 관심을 보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순서였다고 할 수 있다. 의료혜택은 제아무리 힘든 여건일지라도 인간으로서보장 받아야 할 가장 기초적인 혜택이라고 전제할 때 국가의 역할은 너무나 자명했던 것.
대학원 과정을 거치면서 김 장관은 보건의료복지의 선진화를 고민하는 단계를 넘어서, 보다 근본적 해결책이 선행돼야 한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단순히 의료혜택을 제공하는 것은 근본적 해결이 될 수 없으며, 보건의료복지의 소비자라고 할 수 있는 국민 스스로가 자신을 보건의료복지의 제공자이면서 동시에 수혜자라는 생각을 지닐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 장관은 "수혜의 필요성이 발생할 때마다 혜택을 주는 것으로는 근본적 해결이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초중고교 시절 부터 복지문제를 교육하지 않는한 보건의료복지의 선진화는 요원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고 강조했다.
돈 있는 사람이 궁극적으로 행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주변에 불행한 사람이 없어야 하고, 따라서 가진 자가 갖지 못한 자를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눠주는 것을 당연시 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는 진리를 어릴 적 교육과정에서 부터 가르쳐야 한다는 지론이다.
김 장관이 의정활동을 통해 의료보험 통합을 위해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 것도 기실 어느 한쪽이 극심한 고통을 겪는 한 그 주변의 누구도 행복할 수 없다는 사회철학적 관점에서 비롯됨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보건의료 복지의 선진화를 위한 발걸음은 교육학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미국 콜롬비아대학교에서의 교육학 석사 이수와 국회 교육위원회에서의 활약도 이같은 관점에서 이뤄졌다.
서울대 교양강좌 최고인기
지난 90년 이후 10여년간 서울대학교 교양강좌를 통해 진행한 '건강강좌'가 항상 강의실을 채우면서 1만5000여명의 수강생을 기록하는 등 빅히트를 기록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할 일이다.
보건의료복지 보장의 당위성을 역설하는 강의 속에는 오랜기간 자신이 준비해 온 연구와 경험, 고민이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도움을 주려거든 근본적 도움을 줘야한다', '빈민을 비롯한 소외계층에게 필요한 것은 자활의지아 자력갱생 노력이다'는 등 흔하게 듣는 훈계성 교육도 김 장관의 보건의료복지와 관련된 철학 속에 녹아 흥미를 배가시킨 것도 인기강의로 기록된 배경이 되고 있다.
김 장관은 "당시 수강생 중에는 지금까지 강의를 통해 많은 도움을 받았다는 감사표시를 해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흐뭇해 했다.
일주일 정도 휴가가 주어진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김 장관은 "독일에 가고 싶어요. 양식과 도덕성을 가진 사람들이 만들고 함께 가꿔가는 선진 보건의료복지 정책을 현장에 가서 보고 싶거든요"라고 답했다.
보건의료복지에 인생을 건 사람다운 답변이다.
正道 지키려는 원칙주의자 의정활동중 성실성 돋보여 "성격은 분명 온화한 편인데 깐깐한 구석도 있어요" 국회 주변에서는 김화중 장관에 대해 '정도가 가장 빠른길'이라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평한다. 학교급식 문제와 관련해 김 장관을 만났던 급식단체 관계자는 "부드럽게 얘기하다가도 아니다 싶으면 송곳처럼 말하는데 식은 땀이 나더라구요"라고 말했다. 김 장관 자신도 자신의 성격을 '원칙과 정도를 신념처럼 안고다니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을 감안할 때 일견 수긍이 가는 인물평이다. 한 측근은 "언젠가 김 장관 주변 사람이 정치에 입문하겠다는 뜻을 밝혔을 때 소신과 목적이 뚜렷치 않다는 이유로 버럭 화를 내며 만류하는 모습을 본적이 있다"며 "목소리와 겉모습은 부드럽지만 원칙에 어긋난 경우다 싶으면 세상이 흔들릴 정도로 화를 낸다"고 전했다. 시민단체의 한 관계자는 "김 장관의 장점은 특유의 성실성이라고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되면 끝까지 책임지려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실제 김 장관은 장관 입각 이전 의정활동 과정에서 국감NGO모니터단에서 선정하는 우수의원상을 지난 2001년과 2002년 연이어 두차례나 수상했다. 국회의원으로서의 책임감과 성실성을 인정받은것. 김 장관은 "원칙을 지킨다는 것은 세상의 상식에 어긋나지 않게 산다는 의미"라며 "정도를 걷는 과정에서 대인으로서 대의를 실천하고 싶다"고 말했다. ![]() ▲ 김 장관은 2001년 · 2002년 2년 연속 시민단체로부터 우수의원으로 선정됐다. |
즐겨부르는 노래 = 해바라기의 '사랑으로'(아~ 아~ 영원히 변치 않는 우리들의 사랑으로~라는 부분이 마음에 들어서) 좋아하는 연예인 = 권해효(최근 만났을 때 깊은 생각을 지닌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혈액형 = AB형(타인을 의식하고 배려하는 성격으로 알려진 혈액형) 좋아하는 색깔 = 흰색(김의원의 전문분야인 보건의료복지라는 이미지와 어울린다는 평) 존경하는 인물 = 링컨(뚜렷한 철학을 지닌 리더십의 소유자라는 점이 마음에 들어서) 기억에 남는 영화 = 오아시스(후보시절 노무현 대통령과 장애우들이 함께 보며 울었던 기억이 진해서) 좌우명 = 덕을 갖고(有德), 정도(正道)를 걷자. 대의(大義)를 품은 대인(大人)이 되자 취미 = 여유로운 마음으로 독서하기(따뜻한 곳에서 편안자세로 책보는 여유는 마음을 풍요롭게 한다) 일주일 휴가시 하고 싶은 일 = 독일지역 여행(선진 보건복지정책으로 이름난 곳. 꼭 둘러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