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투데이 = 황인선기자] SPC삼립 제빵공정에 사용된 윤활유에서 국제암연구소(IARC) 기준 발암 추정물질이 검출됐다. 경찰은 식품의약품안전처(처장 오유경)에 합동 점검과 고발 조치를 요청했고, 식약처는 현재 대응 여부를 내부 검토 중이다. 문제는 식품 제조기기용 윤활유에 대한 법적 기준은 공전에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전 등록이나 성분 보고 의무가 없어 제도적 사각지대가 드러났다는 점이다.
7일 관련 업계 등에 따르면 경기 시흥경찰서는 지난 1일 SPC삼립 시화공장에서 제빵 공정에 사용한 윤활유에 대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으로부터 감정 결과를 전달받았다. 분석 결과, 해당 윤활유에서 염화메틸렌과 이소프로필알코올이 검출됐다. 두 성분은 식품 제조 현장에서는 검출돼선 안 되는 유해물질로, 경찰은 식약처에 현장 합동점검 및 고발 조치 검토를 요청하는 공문을 4일자로 발송했다.
염화메틸렌은 호흡기나 소화기관, 피부를 통해 흡수돼 중추신경계 기능 이상, 심장 및 신장 독성 등을 유발할 수 있으며,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센터(IARC)에서 ‘인체 발암 추정물질(2A)’로 분류하고 있다. 이소프로필알코올 역시 간·신장·심장 기능 저하, 졸음 및 어지럼증 등의 위해 가능성이 알려져 있다. 또한 간, 신장, 심장의 기능 저하 및 뇌 손장도 일으킬 수 있다.
이번 사안은 지난 5월 19일 SPC삼립 시화공장에서 발생한 작업자 사망 사고와 직결돼 있다. 당시 크림빵 생산라인에서 윤활유를 분사하던 50대 여성 노동자가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숨졌고, 경찰은 사망자가 사용하던 윤활유 용기가 시중 금속 절삭유 제품과 동일하다는 점에 주목해 공업용 윤활유 사용 여부를 수사 중이다.
이에 대해 SPC 측은 “해당 윤활유는 식품용 등급을 받은 글로벌 기업 제품으로, 제조사의 물질안전보건자료상에는 문제가 된 성분이 포함돼 있지 않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국과수 분석 결과와 기업 측 설명이 엇갈리면서 식품 제조현장에서 사용하는 보조 자재에 대한 관리 실효성과 이력 추적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식약처 관계자는 본지 통화에서 “윤활유는 식품첨가물로 분류되지 않아 별도의 허가 대상은 아니지만 ‘식품의 기준 및 규격(공전)’의 기구 및 용기·포장 공통 기준에 따라 식품 제조 설비에 사용하는 윤활유는 ‘식품 또는 식품첨가물’이거나 ‘미국 연방규정집(CFR)에 등재된 물질’이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즉, 식품제조업체는 해당 공전 기준을 준수해야 하며, 식품용 윤활유 사용은 단순한 권고 수준이 아니라 공전상 명확히 규정된 사항이다. 다만 관련 물질이 사전 등록 대상이 아니며, 성분 검증도 자율에 맡겨진 상황이어서 현장 점검 전까지는 위반 여부를 인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사실상 사각지대라는 지적이다.
해썹(HACCP) 기준에서도 식품과 접촉 가능성이 있는 장비에 ‘식품용 등급 윤활유’ 사용을 권장하고 있지만, 이는 평가 항목 중 하나일 뿐 법적 의무사항은 아니다. 윤활유가 등록·보고 대상이 아닌 한 공정 중 이상 성분을 걸러내기란 어렵다는 게 업계 지적이다.
한 식품안전 전문가는 “공전 기준에 명시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윤활유에 대한 등급 등록제나 성분 고시 제도가 없어 관리가 사실상 공백 상태”라며 “소비자 안전을 고려한다면 최소한의 윤활유 성분 등록 및 표준화 체계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미국, 유럽 등 일부 국가는 NSF H1, H2 등급 인증 체계를 통해 윤활유 성분별 용도를 세분화하고 있으며, 미국 연방규정집에 식품 제조기기용 윤활유 허용 성분을 명시하고 있다. 유럽연합(EU)도 식품안전법 내 윤활유 기준을 포함하고 있다.
식약처는 현재 경찰 요청에 따라 현장 점검 및 사후 조치 가능성에 대해 내부 검토 중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4일자로 공문을 접수했으며, 7일 관련 부서 회의를 거쳐 점검 여부와 방식에 대해 처장에게 보고할 예정”이라며 “보고 이후 구체적인 대응 방향이 결정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