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음식은 먹는 것 마시는 것과 과일 등을 포함한다. 절에서는 식사(공양)를 하고 나면 차를 마시고 과일을 먹으면서 차담(茶談)이란 시간을 갖는다. 이제 갓 들어간 초보자인 행자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지만 고참 스님들에게는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차담시간이다. 차를 마시고 과일을 먹으면서 도담(道談)도 하지만, 사찰 내의 대소사(大小事)를 논의하고 소통을 하는 기회다. 차도 마시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다. 절 문화에서 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높다. 객승(客僧)이 방문한다거나, 내빈이 왔을 때, 처음부터 방문목적을 바로 이야기 하지 않고 차 한 잔을 나누면서 서서히 이야기를 하게 된다. 특별한 목적이나 용건이 있어서 절을 찾는 분도 있겠지만, 그저 한번 들려 본 손님도 있게 마련이다. 이런 저런 이유와 목적으로 온 손님과 무난하게 대화를 하게 되는 매개체가 바로 차담인 것이다. 특히 중국의 선종불교(禪宗佛敎)에서는 사찰음식에서 차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역할도 컸다. 스승이 제자를 접견할 때, 차 한 잔 나누면서 제자의 수행의 경지가 어느 정도인지를 점검하면서 한 수 가르쳐 주기도 하고 경책도 했다. 그러므로 선원에서는 차가 항상 준비되어
중국에서 생산된 차는 실크로드 시대부터 중앙아시아와 페르시아를 경유, 로마까지 도달했다. 영국인들은 어느 날인가 차를 좋아하게 됐다. 영국은 17세기경 처음 중국에서 차를 수입했는데, 중국과의 무역불균형을 일으킬 정도로 차수입이 초과하자 인도에서 비밀리에 아편을 재배하여 중국에 밀매해서 무역균형을 맞추려하자 아편전쟁이 일어날 정도로 차는 큰 충돌을 불러일으켰고, 영국은 실론과 아삼에서 차를 재배하게 되었다. 차의 시조는 육우(陸羽,733~804)라는 사람이다. 중국 당나라의 문인인데, 차를 만들고 마시는 것에 관한 지식을 정리한 《다경》(茶經) 3권 등을 저술하였는데, 중국의 차 문화는 이처럼 역사가 길다. 육우는 3살 때 호숫가에 버려졌으나, 용개사(龍盖寺)라는 절의 주지인 지적선사(智積禪師)가 그를 거두어 들였으며, 후에 주지의 성을 따라서, '육(陸)'으로, 이름은 점을 쳐 점괘에 따라 '우(羽)'로 하였다고 한다. 그는 말더듬이었지만, 웅변에 능하였다. 육우가 어렸을 때, 지적선사는 육우가 불경을 읽으며 승려가 되기를 기대했지만, 육우는 유교를 배우려고 하였다. 이에 지적선사는 육우가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하자, 육우는 절에서 도망, 극단에 들어
사찰음식은 먹는 것만이 아니다. 마시는 음료도 사찰음식에 포함된다. 음식은 마시고 먹는 것을 의미한다. 요즘은 커피가 대세이지만, 사찰에서는 지금도 차를 마신다. 불교를 창시한 부처님은 특별히 차를 마셨다는 기록이 없다. 아마도 물을 주로 마셨던 것 같다. 사실, 인도에서도 차의 역사는 뚜렷하지 않지만 대체로 중국에서 수입한 것으로 알려 지고 있다. 중국에서는 차의 역사를 중국 후한시대의 의성(醫聖)인 화타(華佗,145년~208년)에게서 찾고 있다. 전설상으로는 중국 의약과 농업의 창시자인 신농씨(神農氏)로 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황제와 더불어 중국인의 시조로 받들어지는데, 그는 의약(醫藥), 쟁기와 보습, 도기(陶器), 활을 발명했고, 처음으로 시장을 열었다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140년간 재위했으며, 백성을 위해 수많은 약초를 맛보았는데 맹독 성분을 가진 단장초를 맛보다 중독, 화를 입어 다릉(茶陵)에 장사지냈다 한다. 역사적 근거가 확실한 인물은 당나라 때의 육우(陸羽, 733년~ 804년)인데, 그는 문인 출신이다. 차를 만들고 마시는 것에 관한 지식을 정리한 《다경》(茶經) 3권 등을 저술하였으며, 중국의 차 문화에 크게 기여했다. 한국에서는 신라
불교의 진리는 한마디로 열반성취에 있다. 부처님이 정각을 성취했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한다면 열반을 얻은 것이다. 무상대도(無上大道)는 고통과 번뇌와 윤회와 무명(無明)이 소멸된 적멸(寂滅)의 상태를 의미한다. 불교철학을 이해하려면 상당한 논리성을 전제로 하는데, 그래서 “불교는 믿음 위주의 종교라기보다는 철학에 가까운 실천의 종교다”라고 말을 한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무조건 정해진 대로 믿으라는 종교가 아니라, 스스로 사색하고 명상해서 ‘자신이 누구인지? 한번 알아맞혀 봐라’라고 하는 종교에 가깝다. 그러므로 불교를 자각(自覺)의 종교라고 말한다. 열반의 의미를 확연하게 이해라도 해야 불교의 맥을 잡을 수가 있다. 불교는 매우 과학적인 종교이다. 적당히 믿으면 되는 종교가 아니라, 상당히 논리적인 종교로서 철학적 체계를 갖추고 있는 종교란 것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부처님의 육신은 돌아가셨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인 담마 즉 법은 영원무궁하게 항상 구르고 있다. 부처님의 돌아가심을 불교에서는 대반열반 즉 ‘마하빠리니르바나’라고 하는데, ‘빠리’란 말은 원만(圆满)、완전(完全), 진입(进入)이란 뜻인데, 이것은 열반에 들었다는 말이다. 열반은 의미가
절 집 문화에서 흔히 하는 말 가운데 하나가 “평등공양 등차보시”란 말이 있다. 공양(供養)은 평등하게 이제 갓 들어간 초심자인 행자(行者)나 수십 년 절에서 수도한 고참 스님이나 먹는 데에는 차별이 없다는 말이다. 몇 십 년 전만해도 큰 절에서는 대중들이 큰 방에서 함께 기거했다. 특히 공부하는 학인들은 큰 대중 방에서 함께 숙식 학습하면서 생활해야 했다. 방이 워낙 크다보니 보통 50명 정도가 함께 생활해도 별 무리 없이 지냈다. 하루 세 번 먹는 식사도 이 대중 방에서 해결했는데, 이 때는 100정도가 함께 밥을 먹을 때도 있다. 질서정연하게 발우공양을 한다. 대체로 네 개의 발우를 펴고 지정석에 앉으면 소임자 들이 각각 밥통이나 국통을 들고 다니면서 밥을 덜어준다. 이 때 밥의 양이 너무 많거나 적으면 자기 먹을 만큼 수저로 덜어 내기도 하고 더 받기도 한다. 이것을 가반(加飯)이라고 한다. 대체로 덜어내는 일은 드물고 좀 더 먹고 싶으면 가반을 하게 된다. 절간에서는 밥을 함부로 남겨서 버리면 안 된다. 먹을 만큼만 먹어야 한다. 절에서 밥에 대한 원칙은 상하를 불문하고 신참이나 고참을 떠나서 평등하게 먹는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세상살이는 그렇지 않
사찰음식에 관한 서적이 인기다. 대중들이 사찰음식에 관심을 갖는 것은 사찰음식에 대한 본질적인 의미보다는 건강식과의 관련성이다. 누차 언급하지만 사찰음식은 절에서 스님들이 수행하면서 겨우 주린 배를 달래는 정도의 일종의 끼니 해결이었다. 그나마 하루에 한번 만 먹는 사찰이나 암자도 많았다. 음식이 부족해서라기보다는 수행자로서 식탐을 내지 않고 쓰러지지 않을 정도의 기운만 차리면 된다는 생각에서 음식에 대하여 집착하지 않았다. 사실, 부처님 당시에도 출가 사문들은 하루 한 끼만 먹었다. 사문들은 가진 것 없이 무소유의 유행승려(遊行僧侶)들이었기에 걸식(乞食)으로 먹는 것을 해결했다. 걸식은 단순히 얻어먹는 다는 것을 넘어서 ‘보시(베풀다)’ 의 개념에서 출발한다. 인도에서는 불교만이 아닌 힌두교 자이나교 등에서 ‘다나(dāna)’라고 해서 영어의 기증(donation)을 뜻한다. 이 ‘다나’란 산스크리트어 단어를 ‘보시(布施)’로 한역했다. 보시는 대승불교의 덕목·수행·실천을 통칭하는 6바라밀(六波羅蜜)가운데 하나이다. 바라밀(Pāramitā)은 완성(perfection)이란 뜻이다. 불교교리상으로, 바라밀은 미망(迷妄)과 생사(生死)의 차안(此岸:사바세계)에
스님들이 산중 절에서 주로 먹던 음식이 최근에 와서 이렇게 각광을 받을 것이라는 것은 미처 상상도 못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현대인들의 식습관이 영양과잉 편식 단음식 등이 몸에 아주 안 좋은 결과가 나타나자 사찰음식에 주목하게 됐다. 사찰식단이 주로 밥 국 김치나 나물 등이고 가끔씩 특별한 날에는 두부나 버섯류를 먹게 되는데, 음식이 소화가 잘되고 비만이나 각종 질병을 유발하는 음식이 아닌 비교적 청정무공해의 음식이다 보니, 현대인들에게 어필되었다. 게다가 사찰이나 공공단체에서 까지 사찰음식의 가치와 효능을 인정하게 되고, 국민 건강 차원에서도 장려하는 식단으로 발전시켜 일종의 문화콘텐츠로 까지 승화시킨 덕에 사찰음식이 뜨게 됐다. 사실 사찰음식은 영양가도 별로 없고 담백한 음식에 지나지 않는다. 칼로리도 따져봐야 열량이 낮다. 또 별로 맛있는 음식도 아니다. 요즘 시대에는 얼마나 많은 맛 집이 있는가. 너무 많아서 어디를 갈지 모를 정도로 포화상태다. 겨우 끼니나 해결하고 주림이나 달래면서 수행자가 겨우 목숨을 부지하는 수단으로 먹었던 사찰음식은 사실, 절에 손님이 오면 밥상을 내 놓기도 부끄러울 정도였다. 나라가 발전하고 국민 경제가 풍족해지면서 육류나
사찰음식을 이해하는 데는 종합적인 지식이 필요하다. 사찰음식은 공양주 채공 갱두 다각이라는 여러 소임의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종합 밥상이다. 채식위주의 식단보고 사찰음식이라고 하지만, 텃밭에서 가꾼 채소류와 산에서 나는 산나물, 나무에서 얻어지는 버섯, 밭에서 나는 콩이 식재료가 되고, 쌀과 보리 등의 곡류와 마시는 차(茶)와 맑은 청정수까지도 다 포함된다. 사찰음식을 만들려면 빠을 짓는 공양주, 반찬 만드는 채공, 국 끓이는 갱두, 차를 준비하는 다각이 필요하다. 현재 사찰음식을 조리하는 데는 요리 전문가들이 만들지만, 옛날 절간에서는 공양주가 주로 밥을 짓고, 채공이 반찬을 만들고 갱두가 국을 끓여서 한 끼의 밥상이 완성된다. 공양(식사)을 하고 나면 차를 마시는데 이것을 담당하는 소임이 다각(茶角)이다. 절에서는 식사를 하고나면 차를 즐겨 마셨다. 사람들은 사찰음식하면 채식식단만을 생각하기 쉽지만, 첫째는 밥이고 두 번째는 국이고 세 번째는 반찬이다. 그리고 네 번째는 과일과 차라고 할 수 있다. 밥을 먹고 나면 차담(茶談) 시간이 있게 된다. 절에서 밥을 먹을 때는 침묵을 지킨다. 조용히 음식을 관(觀)하면서 마음을 집중하여 먹는 일에만 몰두한다. 절
불교사찰에서 먹는 음식은 기본적으로 채식 위주이며 최근 음식으로 인한 비만과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되는 음식문화와 식습관에서 불교 사찰음식은 다이어트 음식 식단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현대인들은 지나친 과식과 무절제한 식습관으로 체중이 늘고 몸이 비정상적으로 변형돼서 생활에 불편을 느끼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이에 푸드투데이는 동서고금의 불교지식에 해박한 보검스님을 통해 사찰음식에 대해 20편에 나눠 들어본다. 보검(이치란 박사)스님은 영국에서 유학을 했으며 현재 한국불교계의 국제 불교활동분야에서는 선두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석학이다.<편집자 주> 사찰음식은 걸식에서 시작됐다. 한국사찰음식은 중국 선종불교 사찰의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사찰음식의 정신적 원천은 인도 부처님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석가모니부처님은 기원전 563년에 태어나서 483년에 열반에 들었다. 지금으로부터 2600여 년 전이다. 당시 인도에는 슈라마나(사문)라고 하는 유행승(遊行僧)들이 집을 떠나 노숙하면서 도를 닦는 것이 유행이었다. 사실, 이들은 못 먹고 못살아서 집을 나선 사람들이 아니었다. 세간의 지식으로는 인간존재의 근원과 우주 철리의 궁극적 실재를 알 수 없
불교사찰에서 먹는 음식은 기본적으로 채식 위주이며 최근 음식으로 인한 비만과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되는 음식문화와 식습관에서 불교 사찰음식은 다이어트 음식 식단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현대인들은 지나친 과식과 무절제한 식습관으로 체중이 늘고 몸이 비정상적으로 변형돼서 생활에 불편을 느끼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이에 푸드투데이는 동서고금의 불교지식에 해박한 보검스님을 통해 사찰음식에 대해 20편에 나눠 들어본다. 보검(이치란 박사)스님은 영국에서 유학을 했으며 현재 한국불교계의 국제 불교활동분야에서는 선두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석학이다.<편집자 주> 건강에 좋은 웰빙 식단으로 채식위주의 저염 음식 사라져가는 한식의 원형문화로서 가치 큰 건강식 한국사찰에서 먹는 음식이 일반 대중에게 각광을 받게 된 것은 사찰음식이 현대 한국인들의 식문화와 관련이 깊다. 한동안 우리는 육식을 너무 많이 먹다 보니 몸이 비대해지고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된다는 것을 차츰차츰 알게 되었다. 물론 육식도 전연 하지 않으면 안 되겠지만 지나치게 과식하면 해롭다. 모든 음식이 다 마찬가지 논리다. ‘과유불식(過猶不食)’이란 말이 있듯이 너무 지나치게 과식하면 차라리 먹지 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