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푸드투데이 = 황인선기자] 정책은 바뀔 수 있다. 잘못된 판단이라면 고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정부가 불과 한 달 전 확정한 정책을 다시 바꾸려 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무엇이 달라졌는지, 왜 한 달 전에는 지금의 판단을 하지 못했는지 설명할 책임이 생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처장 오유경)가 당류와 식용유지류에 대한 유전자변형식품(GMO) 표시제 시행 시기를 2027년 12월 31일에서 2026년 12월 31일로 1년 앞당기는 방안을 행정예고했다.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다. 식약처도 영업자의 준비기간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인 만큼 오는 25일까지 업계 등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수렴한 뒤 최종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그 전에 있다.
식약처는 불과 지난 7월 8일 GMO 표시기준을 개정하면서 간장류는 올해 12월 31일, 당류와 식용유지류는 2027년 12월 31일부터 시행하도록 확정했다. 당류와 식용유지류에는 간장류보다 1년의 준비기간을 더 부여했다.
그런데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은 8월 5일, 이번에는 그 1년의 유예기간을 없애겠다고 나섰다.
식약처가 내세운 이유는 품목별 시행 시기 차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소비자 혼란을 줄이고 소비자의 알권리와 식품 선택권을 보다 빨리 보장하기 위해서다.
소비자의 알권리는 중요하다. GMO 원료 사용 여부를 소비자가 확인할 수 있도록 표시 범위를 확대하겠다는 정책 취지에도 이견은 없다.
그러나 소비자 알권리가 중요하다는 사실은 7월 8일에도 같았다. 품목별 시행 시기가 다르면 소비자가 혼란을 느낄 수 있다는 점도 한 달 사이 새롭게 등장한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면 묻게 된다.
7월 8일 당류와 식용유지류의 시행일을 2027년 말로 정할 당시에는 이런 소비자 혼란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인가. 아니면 알고도 업계의 준비기간을 보장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판단했던 것인가.
후자였다면 불과 한 달 만에 그 판단을 뒤집을 만큼 어떤 사정이 달라졌는지 설명해야 한다.
기업 입장에서 시행일은 달력에 적힌 숫자 하나가 아니다.
원료 구매계약부터 공급망 관리, 구분유통증명 등 증빙서류 확보, 제품별 이력관리, 포장재 디자인 변경과 동판 제작, 기존 포장재 재고 소진, 생산 일정까지 줄줄이 연결돼 있다. 시행 시점이 바뀌면 이 모든 계획을 다시 짜야 한다.
특히 식용유지류는 원료 구조 자체가 수입 의존도가 높다.
농림축산식품부의 ‘2025 식품산업 원료소비 실태조사’를 보면 식용유지류 제조 원료 가운데 대두가 66.7%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옥수수가 12.1%를 차지한다. 이들 대두와 옥수수의 수입산 비중은 100%다.
2024년 식용유 생산에 사용된 대두만 79만1340톤에 이른다. 국내 식용유 생산의 중심인 대두유는 GMO 표시 확대에 따른 영향이 상대적으로 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업계에서 갑작스러운 행정예고에 “비상이 걸렸다”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논지엠오(Non-GMO) 원료는 필요하다고 오늘 주문해 내일 확보할 수 있는 상품이 아니다. 국제 원료시장에서 물량을 확보하고 계약한 뒤 국내로 들여오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포장재도 마찬가지다.
본지가 지난 6월 GMO 표시제 준비 상황을 취재했을 당시 업계에서는 “글자 하나가 바뀌어도 동판을 다시 만들어야 하고 수백만원이 들 수 있다”며 최종 기준이 늦어질수록 비용과 혼선이 커진다고 호소했다.
그때만 해도 당류와 식용유지류에는 2027년 말까지 준비할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한 달여 뒤 상황은 달라졌다. 이번 행정예고안이 그대로 확정되면 지난달 고시 기준으로 약 1년 4개월가량 남아 있던 준비기간은 넉 달 남짓으로 줄어든다.
정부가 공식 고시한 시행일을 믿고 준비에 들어간 기업 입장에서는 불과 한 달 만에 계획의 전제가 달라진 셈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소비자에게 GMO 표시제가 어떻게 받아들여질 것인지에 대한 준비다.
GMO 표시는 안전성 경고가 아니다. 제품에 어떤 원료를 사용했는지를 알려주는 정보 표시다.
그러나 소비자의 인식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한국소비자연맹이 지난해 소비자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GMO 표시제에 대해 알고 있다는 응답이 24.0%에 그쳤다. 반면 농업생명공학기술이 필요하지 않다고 답한 이유로는 ‘인체 안전성·환경 유해성 등 부정적 인식’이 49.5%로 가장 높았다.
정부가 표시제를 확대한다면 제품에 문구 하나를 추가하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된다. GMO 표시가 곧 위해식품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과 소비자가 표시 정보를 어떻게 이해하고 선택에 활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병행돼야 한다.
특히 간장류와 식용유지류는 소비자가 실제 매대에서 체감하는 양상도 다를 수 있다.
간장은 현재 상당 부분 Non-GMO 원료를 사용하고 있어 표시제가 시행되더라도 소비자가 실제 GMO 표시 제품을 접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다. 반면 대두유는 제조용 대두의 수입 의존도가 높고 GMO 원료 사용 비중도 큰 만큼 식용유지류까지 동시에 시행될 경우 소비자가 GMO 표시를 접하는 빈도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그만큼 업계의 준비뿐 아니라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소통도 필요하다.
물론 이번 행정예고는 확정안이 아니다. 식약처가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듣는 것도 필요한 행정절차다. 의견 수렴 결과에 따라 조기 시행안을 수정하거나 기존 일정을 유지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 묻게 된다.
왜 이런 논의를 7월 8일 고시를 확정하기 전에 충분히 하지 못했나.
GMO 표시 확대는 갑자기 등장한 정책이 아니다. 간장·당류·식용유지류는 소비자·시민단체가 오랫동안 표시 확대를 요구해온 품목이고, 2020년부터 업계와 학계, 소비자단체가 참여한 ‘GMO 표시강화 실무협의회’에서도 논의가 이어져 왔다.
수년간 논의한 제도의 시행일이 최종 고시 한 달 만에 다시 흔들린다면 현장에서는 정부의 어느 결정을 기준으로 준비해야 하나.
7월의 고시를 믿어야 하나, 8월의 행정예고를 믿어야 하나. 또 몇 달 뒤 다른 판단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기업들은 무엇을 근거로 확신할 수 있나.
행정에는 속도도 필요하다. 소비자의 알권리를 하루라도 빨리 보장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그러나 정책의 속도만큼 중요한 것이 예측 가능성과 신뢰다.
식품기업은 정부가 발표한 고시를 기준으로 원료를 계약하고 제품을 생산하며 포장재를 주문한다. 정부가 오늘 확정한 일정을 한 달 뒤 다시 흔들면 그 비용과 혼란은 공문 한 장으로 되돌릴 수 없다.
소비자 알권리를 앞당기겠다는 명분은 옳다. 그러나 옳은 목적이 가벼운 행정까지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한 달 전에 2027년이 적정하다고 판단했던 식약처가 이제 2026년이 맞다고 판단했다면 단순히 “소비자 혼란을 줄이기 위해서”라는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
무엇이 달라졌는지, 왜 기존 결정이 한 달 만에 바뀌어야 하는지, 당초 1년의 추가 준비기간을 부여했던 판단은 무엇에 근거했는지, 그리고 시행일을 앞당길 경우 기업이 감당해야 할 원료 수급과 비용, 생산 현장의 혼선까지 얼마나 검토했는지 답해야 한다.
행정예고를 했으니 의견을 들어보겠다는 말로 끝낼 일이 아니다. 먼저 설명해야 할 것은 의견을 내야 하는 업계가 아니라, 한 달 만에 자신의 결정을 다시 고치겠다고 나선 정부다.
정책은 필요하면 바꿀 수 있다.
그러나 정책을 믿고 준비한 현장의 시간까지 손바닥 뒤집듯 되돌릴 수는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