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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통령 “농산물 유통구조 근본 개혁”…“농협에만 맡겨선 안 돼”

산지-소비지 가격 괴리 저격…정부 직접 재정 투자 검토
소매 단계 유통비용 25% 달해…농협 경제사업 수술대 오를 듯

 

[푸드투데이 = 황인선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농산물 산지가격과 소비자가격 사이의 격차를 물가 불안의 구조적 원인으로 지목하고 유통구조 개혁을 주문했다. 민간과 농협 중심으로 운영돼온 유통체계를 점검하고, 필요할 경우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 산지 물류와 저장 기반을 보강하는 방안이 검토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14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물가 관리 대책을 보고받은 뒤 “우리나라의 유통 구조에 구조적인 문제가 꽤 있는 것 같다”며 “유통 구조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한두 가지 특별한 원인 때문에 물가에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니라 자잘한 많은 문제점이 중첩돼 대한민국이 전 세계에서 물가가 가장 비싼 축에 속한다는 말까지 나온다”고 지적했다.

 

이어 “공정거래위원회가 담합이나 독과점의 폐해를 강하게 압박하니 이 정도를 유지하는 것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물가 상승률이 훨씬 높아졌을 것”이라며 각 부처에 적극적인 물가 대응을 주문했다.

 

농산물 가격과 관련해서는 생산자가 받는 가격과 소비자가 지불하는 가격의 움직임이 다르다는 점을 문제로 들었다.

 

이 대통령은 “시장 가격과 현지 생산지 가격 간 괴리가 너무 크다”며 “생산지 가격은 널뛰는데 소비 가격은 계속 올라가기만 한다”고 말했다.

 

산지에서 농산물 가격이 하락하더라도 소매가격에는 늦게 반영되거나, 유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과 마진으로 인해 소비자가격 하락으로 이어지지 않는 현행 구조를 겨냥한 발언이다.

 

이 대통령은 특히 농산물 유통을 민간과 농협에 크게 의존해온 방식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유통 라인에 대해 민간에 너무 의존하는 것 아니냐”며 “지금은 농협에 거의 맡겨 놓은 상황인데 정부가 유통구조 개선에 비용을 지출하든, 시스템에 참여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필요하면 투자도 해야 한다”며 “농업은 전략·안보 산업으로 시장에만 맡겨서 될 영역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이 농림축산식품부와 관련 방안을 협의하겠다고 답하자 이 대통령은 “방법을 찾아보라”며 후속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이번 발언은 정부가 추진해온 농산물 유통정책에서 공공의 역할을 한층 강화하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그동안 농식품부는 온라인도매시장 확대와 산지 조직화, 스마트 산지유통센터 확충, 공영도매시장 경쟁 촉진 등을 중심으로 유통구조 개선을 추진해왔다. 산지와 소비지를 직접 연결해 거래 단계를 줄이고, 선별·저장·출하 과정을 자동화해 유통비용을 낮추는 방식이다.

 

그러나 농산물은 생산 시기와 출하 물량이 일정하지 않고 기상 여건에 따라 가격 변동이 크다. 저장시설과 공동 물류망이 충분하지 않은 산지는 가격이 급락하더라도 출하를 늦추기 어렵고, 개별 농가가 대형 유통업체와 직접 거래하기도 쉽지 않다.

 

대통령이 정부의 비용 지출과 시스템 참여를 주문한 만큼 산지유통센터와 저온저장고, 공동선별·포장시설, 공동 집하·배송망 등 민간이 단독으로 구축하기 어려운 기반시설에 대한 재정 지원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여러 농가의 물량을 한곳에 모아 선별하고 공동으로 배송하면 운송 횟수와 공차 운행을 줄일 수 있다. 출하 시기를 조절할 수 있는 저장시설이 늘어나면 특정 시기에 물량이 집중되면서 산지가격이 급락하는 문제를 완화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농산물 유통단계별 비용과 가격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방안도 주요 과제로 꼽힌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23년 기준 농산물 소비자가격에서 생산자 수취가격을 제외한 유통비용률은 49.2%로 집계됐다. 1998년 39.8%와 비교하면 25년 사이 9.4%포인트 높아졌다.

 

단계별 유통비용률은 소매 단계가 25.2%로 가장 높았고 도매 단계 14.5%, 산지 출하 단계 9.5%였다. 농산물 소비자가격의 절반가량이 산지 출하 이후 도매와 소매 과정에서 발생한 셈이다.

 

다만 유통비용에는 운송비와 인건비, 임대료, 선별·포장비, 감모 비용 등 실제 유통에 필요한 비용도 포함된다. 단순히 유통단계를 없애는 것만으로 가격을 낮추기보다 단계별 비용과 마진을 구분해 공개하고 비효율이 발생하는 구간을 찾아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농협 경제사업도 유통개혁 논의의 중심에 설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이 농협 의존도가 높은 현행 구조를 직접 언급한 만큼 농협이 산지 물량을 안정적으로 모으고 농업인의 가격 교섭력을 높이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 점검이 불가피해졌다.

 

농협은 산지 농산물을 공동선별하고 대형 유통업체와 거래하며 농가의 판로를 확보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그러나 지역과 품목에 따라 산지 조직화 수준과 판매 역량의 격차가 크고, 일부 조합은 경제사업보다 신용사업에 치중한다는 지적도 이어져왔다.

 

농식품부가 운영하는 농협개혁 추진단에서도 경제사업 활성화와 산지 유통 경쟁력 강화가 주요 과제로 다뤄지고 있다. 향후 농협개혁 논의는 중앙회 지배구조와 내부통제뿐 아니라 농산물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모아 제값에 판매하고 있는지를 평가하는 방향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공영도매시장 개편에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도매시장법인의 경쟁을 촉진하고 거래량과 수수료, 경영정보 공개를 강화하는 한편 산지가격 변동이 소비자가격에 신속하게 반영되도록 가격 전달체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질 수 있다.

 

다만 대통령의 발언이 정부의 농산물 직접 매입·판매나 새로운 공공 유통기관 설립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로서는 기획예산처와 농식품부가 기존 정책을 점검하고 정부가 재정을 투입하거나 보완할 분야를 찾으라는 주문에 가깝다.

 

향후 정책의 초점은 정부가 유통시장의 새로운 사업자로 나서는 데 있기보다 민간과 농협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산지 저장·물류 기반을 보강하고, 기존 유통주체의 책임과 성과를 높이는 데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농업인이 제값을 받으면서도 소비자가 합리적인 가격에 농산물을 구매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산지 조직화와 공동 물류, 가격 정보 공개, 농협 경제사업 개선이 함께 추진돼야 한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