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도는 결식아동 급식..수요 따로, 공급 따로

  • 등록 2008.12.30 10:2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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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족발 1㎏, 마른 조기 1㎏, 도시락 김 1봉, 소시지 160g, 햄버거스테이크 200g, 초코파이 720g, 쌀과자 100g, 살코기 참치 150g, 오렌지 음료수 300㎎'

자녀 4명을 둔 제주시 구좌읍 L씨 모자(母子) 가정은 요즘 냉장고에 고기와 소시지를 가득 쌓아놓고 있다. 이 집이 부자여서가 아니라 결식아동 급식을 받기 때문이다. 2년여 동안 매달 고기와 소시지 등을 지원받은 이 집은 방학 때에는 급식 물량이 2∼3배로 늘어 이웃집 주민 냉장고를 빌리는 지경이다.

저소득층 아동의 생명줄인 결식아동 급식이 행정 당국의 무신경으로 겉돌고 있다.

2005년 1월 서귀포시에서 불거진 부실도시락 파문 이후 예산이 대폭 늘고 지원방법도 다양해졌지만 현장조사가 부족한 채 행정편의적인 위탁 급식에 의존하다 보니까 여전히 수요와 공급이 맞아떨어지지 않고 있다.

특히 굶는 아이들에게 주던 급식을 차상위 저소득 가정의 '굶을 가능성이 있는 아동'에게 확대하고 나서 뜻밖에도 `음식물 처리 난'이 새로운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L씨 가족이 대표적인 예다. 차상위 저소득 가정인 이 집도 "어렵긴 해도 아이들 굶길 정도는 아니지만 읍사무소 직원의 간곡한 권유로 급식을 받기 시작했다"고 한다. 문제는 아이들이 원하는 걸 주지 않고 `정해진 걸' 준다는 데 있다.

돼지족발과 마른 조기 등은 이달 한 달 동안 배달된 주.부식 분량이다.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을 따져 1인당 하루 3000원어치 식료품을 준다. L씨 가정은 고교생은 9일분 2만7000원, 중학생은 10일분 3만원, 초등생 2명은 16일분 4만8000원씩을 받았으니 이번 달에만 4명 몫으로 15만3000원어치 식료품을 받은 셈이다.

돼지족발 등은 4명 공통으로 배달된 분량이고, 중학생 한 명에겐 하루치 오이 1㎏(4개),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이 더 긴 초등학생 2명에게는 여기에 더해 각각 불고기 햄, 숯불떡깔비 등을 더 줬다. 덕분에 이 집에는 자꾸만 고기가 쌓여가는 것이다.

손녀 3명을 키우는 구좌읍 Y(72) 할머니는 거동이 불편해 요리하기 어렵지만 행정당국은 요리를 할 수 있는 집으로 분류하고 있다. 덕분에 이 집 냉장고 냉동 칸엔 수개월 치 고기가 가득 쌓여 있다.

제주시 급식아동은 모두 5891명. 이중 요리를 할 수 없는 745명에겐 식사나 도시락을 주고, 요리를 할 수 있는 5146명에겐 L씨 가정처럼 식료품을 갖다준다. 제주시는 19개 동은 5개 종합사회복지관에 맡기고, 5개 읍.면은 지역 마트를 통해 식료품을 주고 있다.

문제는 지역 마트가 수급자의 가정 형편이나 영양공급을 꼼꼼히 고려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까 고기와 떡갈비, 햄, 소시지를 줘도 불만이 터져 나온다. L씨는 "식료품이 배달될 때마다 불만을 터뜨리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곤혹스럽다"고 말했다.

더 심한 일도 있다. L씨는 "미국제 과자에 들어간 유해 성분이 언론에 보도되면 그 과자를 주더라"며 "잘 팔리지 않는 제품을 결식아동 급식으로 처리한다는 인상을 받을 때가 많다"고 토로했다.

구좌읍 결식아동 145명에게 식료품을 공급하는 마트 관계자는 "읍사무소가 정해준 금액에 따라 아이들의 영양을 고려해 품목을 선정하고 있다"면서도 "145명분에게 돼지족발을 똑같이 나눠주려면 수개월 분을 비축해야 1개월치를 배달할 수 있다"고 나름의 고충을 토로했다.

해결 방법은 없을까.

전문가들은 가정 형편에 따라 식품권(식료품만 살 수 있는 상품권)을 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L씨도 "차라리 상품권을 주면 꼭 필요한 식료품을 살 수 있을 텐데 도움을 받는 처지여서 개선을 요구할 수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제주시 관계자는 "내년부터 읍.면 지역도 동부와 서부 종합사회복지관을 통해 결식아동 급식을 하겠다"며 "현장 확인을 강화해 아동과 가정의 특성을 고려하겠다"고 말했다.
푸드투데이 하용준 기자 001@foodtoday.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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