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가지는 소명, 사회에 그리고 그 언론사가 갖는 소명에 의해 기사는 그 형태를 보이기 마련이다. 그 소명과 열정이 그 한마디로 깨지는 순간이었다.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위해 무언가 남을 만한 기사를 쓰고픈 욕망에 이리저리 뛰어 다니면 자료를 모아 오던차에 어처구니없는 일이 가로막았다.
더 가슴이 아픈 것은 업체 홍보 담당자는 말하는 거절의 이유가 '보고 들어본 적 없는 신문'이기 때문이다. 신문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이다. '사이비언론'에 대한 냄새를 풍긴다는 의미였다.
그래 이런 면에서는 이해해보자. '사이비 언론'. 정작 그런 사이비 언론에 피해를 봤다면 그런 무성의한 태도에 숨어 있는 아픔과 얇은 의도(?)가 어느정도 이해간다.
그러나 한가지 아쉬운 것은 '사이비'언론이 혼탁한 사회에서 태동한 산물이라는 것. 그리고 그 부정한 산물에 업체도 빼놓을 수 없다는 주역이었고 그리고 그 속에서 큰언론 지향주의적인 업계의 분위기가 편향된 생각이라는 걸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내가 접촉하려 했던 업체를 비롯해 업계에서는 그러한 것을 인식, 책임을 동감하지 못한채 무작정 의심하는 것 또한 편견과 부정한 잣대에 라는 것이다.
신문사는 성역이 없다.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하면 스스로 정확한 정보와 참언론을 지향하는데서는 성역이 없어야 된다.
그러나 성역은 있다. 그 성역은 부정한 의도로 접근할 때 필요한 것이다.
업체에서는 정확한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채 큰 언론 우선주의에 빠져 정작 업계를 대변하는 언론에는 작은 언론으로 격하시켜 의심하고 홀대하는 편견과 오해, 필요없는 산물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언론사도 변해야겠지만 업체에서도 그러한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정작 필요한 것은 업계나 언론사나 '무엇이 사회를 위하는 것이냐'다.
<취재부 유원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