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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먹거리 이슈로 본 식품산업 40년

우지파동부터 낙동강 페놀 유출, 식중독 분유, 쓰레기 만두...최근 살충제 달걀까지

[푸드투데이 = 황인선기자] 국내 식품산업은 최근 10년 사이 폭발적인 성장을 이뤘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발간한 ‘식품의약품통계연보’에 따르면 국내 식품산업은 2017년 153조5500억원으로 최근 5년 동안 연평균 성장률 1.22%를 기록했다.

최근 1인 가구 및 맞벌이 부부 증가로 국내 식품산업은 계속 성장할 전망이다. 국내 식품산업은 1980년대 급속한 경제성장과 함께 다양한 가공식품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 커피, 라면, 제분, 아이스크림, 청량음료 등 서구화 식품공장이 설립되며 발전기를 거쳐 1990년대 성숙기에 들어섰다. 

2000년대 식품산업은 간편식품 확산과 함께 글로벌시장 공략, 음식과 기술을 결합한 푸드테크 사업의 영역이 빠르게 전개되고 있다.

이에 따라 식품형태도 다양해 졌는데 인스턴트식품, 냉장.냉동식품, 가정간편식, 건강기능식품 등의 발전을 가져왔고 식품소비 성향 역시 고급화, 세분화, 편의성, 기능성에 대한 욕구가 높아졌다.

이같은 소비 성향은 각종 가공식품에서 유해성 논란이 일어나고 대기업 제품에서 이물이 검출되는 등 식품 안전성 문제가 사회적 이슈화되면서 짙어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다양한 가공식품이 우리 식탁에 연일 쏟아져 나오면서 가공식품을 둘러싼 유해성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소비자들은 무엇을 어떻게 먹어야 안전하게 먹을 수 있을지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주부 손모(36.서울 거주)씨는 "(각종 식품사고)뉴스가 나올때 마다 가슴이 철렁해요"라며 "특히 아이들이 주로 먹는 식품에서 문제가 될 때면 배신감 마저 든다"고 말했다.

전 국민을 먹거리 공포 속으로 몰아 넣었던 대형 사건이 터질 때마다 관련 산업과 정책은 또 한번 변화를 가져왔다. 이에 사회적 이슈를 몰고온 가공식품의 유해성 논란과 그에 따른 관련 산업의 변화 등을 짚어본다.

◇ 2000년대



2017년 : '살충제 달걀' 사태...한 판에 1만원 가격폭등에 산란일자 표시까지

지난달 23일부터 '달걀 껍데기(난각) 산란일자 표시'가 의무화 됐다. 이에 따라 소비자들은 기존 고유번호, 사육환경 코드에 산란일자까지 적혀있어 언제 생산된 달걀인지 알고 먹을 수 있게 됐다.

이번 정책은 2017년 8월 살충제 달걀 사태를 계기로 축산물 표시기준이 개정됨에 따라 지난해 8월 23일부터 달걀 껍데기에 생산자 고유번호 5자리와 닭 사육환경번호 1자리 표시하던 데에서 추가한 것이다. 

2017년 계란에서 검출된 살충제 사건은 전 국민을 분노케 했다. 국내 산란계(알 낳는 닭) 농장에서 생산된 계란에서 인체에 치명적인 '피프로필' 살충제가 검출된 것인데 국민 다소비 식품인 만큼 공포는 컸다.

피프로닐은 벌레의 중추 신경계를 파괴하는 살충제로 사람에게 두통이나 감각이상, 장기손상 등을 일으킬 수 있다. 국제보건기구(WHO) 역시 유럽에서 살충제 계란 파문이 일자 피프로닐을 과다 섭취할 경우 간장·신장 등 장기가 손상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정부는 전국 산란 농가의 계란 출하를 중단시켰고 전수조사에 나섰다.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 몫이 였다. 계란 한 판 가격이 1만원대에 이르는 등 계란값은 폭등했고 '계란 대란'이 일었다. 급기야 정부는 동남아산 계란의 수입을 허용하기에 이르렀다.



계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으로 사건이 있었던 2017년 8월 이후 계란 소비량은 30~40% 가량 줄어들었다. 이후 계란 안전성에 대한 소비자들의 요구는 빗발쳤고 정부는 이에 대한 대책의 일환으로 산란일자 표시 의무제 카드를 빼들었다. 

농가들은 "당일 또는 전일 생산된 달걀만 판매되고 그 이상된 달걀은 폐기, 신선한 달걀임에도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산란일자 표시 정책에 반대하고 나섰지만 끝내 농가의 뜻은 받아들여 지지 않았고 지난달 23일부터 산란일자가 표시된 달걀이 판매 중이다.



2015년 : '가짜 백수오' 파동 홈쇼핑 완판 신화 역사 속으로

2015년 온 국민을 충격에 몰아 넣었던 '가짜 백수오 파동'. 내츄럴엔도텍의 백수오 궁은 2012년 홈쇼핑 첫 출시 이후 1800억원의 판매액을 돌파하며 큰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2015년 백수오와 비슷한 이엽우피소가 제품에 섞여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가짜 백수오 파동' 이 일어났고 이후 판매가 중단됐다.

당시 이엽우피소의 독성과 인체 유해성을 두고 한국소비자원과 식품의약품안전처 간의 설전이 벌이지기도 했다. 여론이 들끓으면서 9만원이 넘었던 내츄럴엔도텍 종가는 5만대로 급락하기도 했다. 관련 시장에서 백수오 제품은 사라졌다.



소비자들은 내츄럴엔도텍과 TV홈쇼핑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했다. 소비자들은 제품에 백수오가 들어가지 않았거나 이를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면 제품을 구매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2억 1000여만원을 배상하라는 것이였다.

2년이 훌쩍 넘어 식약처는 이업우피소에 대한 안전성 평가 결과를 내놓았다. 식약처는 "이엽우피소는 열수추출물과 분말 모두 인체에 해로울 수 있고, 백수오는 열수추출물 형태로는 무해하다"고 결론냈다.

내츄럴엔도텍은 신뢰 회복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고 2년 만에 홈쇼핑으로 복귀했다.

2011년 : 매일유업 '식중독 분유' 파동...일동후디스에 2위 자리 내주기도

2011년 엄마들을 광분한게 한 사건이 터진다. 유아가 먹는 조제분유에서 식중독을 일으키는 황색포도상구균이 검출된 것이다. 

당시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은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조제분유에 대한 정기 수거검사 과정 중 매일유업의 ‘앱솔루트 프리미엄명작 플러스-2’ 에서 식중독균인 황색포도상구균이 검출됐다고 발표하고 긴급 회수에 들어갔다.

매일유업은 외부 분석 기관에 조사를 의뢰한 결과 식중독균이 검출되지 않았다고 주장했으나 이미 이미지에 큰 타격을 받았다.

이 사고로 매일유업은 분유시장에서 30%에 가깝던 시장점유율이 10% 초반까지 떨어져 일동후디스에 2위 자리를 내주기도 했다. 

2004년 : 언론이 키운 '쓰레기 만두' 파동...만두업체 줄도산에 자살까지

2004년 6월 7일 '쓰레기 무말랭이'로 만두를 만들어 판 업자들이 경찰에 붙잡혔다는 보도가 나왔다. 모든 신문사의 1면과 사회면은 '쓰레기 만두' 기사로 뒤덮혔고 자주 즐겨 먹는 만두 속에 쓰레기로 버려져야 할 짜투리 무가 쓰였다는 사실에 여론은 순식간에 들끓었다. 

당시 식약청은 불량 무말랭이를 사용해 만두를 제조한 25개 업체의 명단을 공개했다. 불량 무말랭이 업체로부터 원료를 사들인 기록이 있는 모든 만두 업체는 '불량만두 업체'로 낙인이 찍힘 셈이다.



이로 인해 국내 대부분의 만두 업체들은 큰 타격을 입었다. 심한 곳은 하루 매출의 90%가 감소했으며 전국 130여 개의 만두 제조업체는 파산위기에 처했다. 단무지 공장 매출도 70%가량 감소했다. 심지어 일본에서는 한국산 만두 수입을 전면금지하는 등 국제적으로 파장을 일으켰다. 

상황이 이러자 한 만두 제조업체 사장은 자살까지 했다. 당시 사장은 "우리 만두는 절대로 쓰레기가 아니다. 제발 믿어 달라”고 호소했다. 

해당 업체를 취재한 방송사들이 내보낸 쓰레기 단무지 화면은 경찰이 제공한 것이였는데 문제의 장면 속 쓰레기 단무지는 만두소 재료가 아니라 버리기 위해 모아 놓았던 것이였다. 결국 언론의 과장 보도가 파장을 더 키운 셈이다.

결국 대부분의 만두 업체들은 무죄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영세업체들은 거의 도산했고 만두 시장은 차갑게 얼어 붙었다.

◇ 1990년대 

1991년 :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오비맥주 버리기 캠페인, 하이트에 1위 자리 내줘

사람이 조금만 먹어도 죽는다는 독극물인 '페놀'이 유출된 사건이 터졌다. 1991년 두산전자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이다. 당시는 수질오염에 대한 관심이 깊은 시기였다. 낙동강 유역의 두산전자 구미공장에서 30t의 페놀이 유출돼 전국민적인 분노를 샀다. 두산전자 페놀 원액 저장 탱크에서 페놀수지 생산라인을 연결하는 파이프가 파열된 게 원인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두산제품 불매운동이 벌어졌고 급기야 두산 계열사인 동양맥주(현 오비맥주) 버리기 캠페인까지 벌어졌다. 당시 오비맥주는 시장 점유율 70%에 육박, 국내 1등 맥주였다. 

40여년간 줄곧 1위 자리를 지켜온 오비맥주에 위기가 찾아온 것은 이때다.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며 맥주시장의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조선맥주의 반격이 시작된 것.

조선맥주는 1993년 '하이트맥주'라는 신제품을 출시, '지하 150m 천연 암반수’라는 물 마케팅을 펼쳤다. 맥주의 90%는 물. 맥주를 끓여 드시겠습니까?’라는 하이트의 광고 문구는 깨끗함을 강조해 소비자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이후 하이트는 오비맥주를 추월하고 현재까지 1위 자리를 한번도 놓치지 않고 있다. 반면 오비맥주는 1995년 사명까지 바꾸며 '아이스', '넥스', '라거' 등을 출시했지만 1위 탈환에는 번번이 실패했다. 

◇ 1980년대 

1989년 : 삼양식품 '우지 파동' ...끝없는 신뢰도.점유율 하락  업계 1위 명성 어디로

국내 라면시장의 역사적인 사건으로 기록되는 1989년 우지파동. 미국에서 비식용으로 구분된 우지 원료를 식품 제조.가공.조리용으로 사용했다는 것인데, 1963년 국내에 최초로 라면을 선보인 삼양식품은 이 우지파동으로 당시 가액 백수십억억원 분량의 시중 제품을 수거․폐기하는 등 큰 손실을 입고 폐업직전까지 몰렸다. 

삼양라면 우지파동은 1989년 11월 3일, 검찰에 ‘라면을 공업용 우지로 튀긴다’는 익명의 투서가 접수되면서 시작됐다.

당시 투서 내용과 검찰의 주장에 따르면 라면을 튀길 때 사용한 미국산 쇠기름은 미국에서 비식용으로 분류된 2~3등급 우지이며 따라서 사람이 먹을 수 없는 ‘공업용’이라는 것이었다.



당시 삼양라면에 공급된 2~3등급 우지는 정부의 권장과 추천에 의해 식용으로 수입허가 및 통관해 정제 후 사용한 것이었다.

소비자들은 “공업용 쇠기름을 식품에 사용했다”고 강하게 분노했고 삼양식품은 라면시장의 60%를 장악하며 25년 동안 줄돋 업계 1위를 굳건지 지켜왔으나 연일 신문과 방송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며 졸지에 파렴치한 기업으로 전락했다.

검찰은 관련자들을 '공업용 우지'를 사용해 라면 등을 제조.판매한 혐의로 구속했다. 7년 9개월이라는 긴 법정공방 끝에 1995년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실추된 회사의 명예는 좀처럼 회복되지 못했다. 

무엇보다 ‘삼양라면은 몸에 해롭다’라는 소비자의 인식이 자리하면서 라면사업 부활을 위한 각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시장점유율이 옛 명성만큼 오르지 못하고 있다. 

삼양식품과 달리 팜유를 사용했던 농심은 우지 파동으로 선두 자리를 굳혔다. 농심은 1985년 3월 1위에 올라섰는데 역전 당시 라면시장 점유율은 농심 40.4%,  삼양식품 39.6%, 한국야쿠르트 13.5% 였다. 이후 농심은 '신라면'으로 삼양식품과의 간격을 큰 폭으로 벌렸고 현재까지도 라면업계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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