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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살충제 계란 친환경 인증, 관료주의의 산물

이로문 법학박사.시인

필자는 종종 다양한 정보를 얻기 위해 영국의 더 가디언이나 BBC 홈페이지를 찾아가 뉴스를 찾아보곤 한다. 영국의 더 가디언 홈페이지를 통해 유럽에서 살충제 계란 파동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8월 4일쯤으로 기억한다. 그 때만 해도 우리나라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네덜란드 중에서도 극히 일부 농가의 문제려니 생각했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지금은 지구의 반대편에 있는 소식도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는 글로벌 시대라고 하는데, 일주일 정도가 지나고 나서야 우리나라에서도 살충제 계란 문제가 이슈화됐다. 

우리 정부는 당시 외국의 이러한 상황조차 파악을 못했던 것일까? 아니면 파악을 하고도 외국의 문제일 뿐 우리나라에서는 전혀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둘 다에 해당하는 것 같아 국민의 한 사람으로 우리 정부의 무능력과 무관심에 씁쓸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상황 파악도 늦었지만 안심하고 먹어도 된다는 엉터리 발표는 국민의 분노를 치밀어 오르게 했다. 이 사이에 농림축산식품부는 뭘 했을까?     

분명 유럽에 나가 있는 농식품부나 식약처 공무원이 있을텐데 이를 소속 부처에 보고하지 않은 것도 문제고, 침묵한 외교관들 역시 질타를 받아 마땅하다. 주한 몇 나라 대사관에 확인한 결과 이러한 역할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말한다.
살충제 계란에 친환경 인증이 계속되도록 방치했던 농식품부의 행태는 말문을 막히게 한다.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전국 1239개 산란계 농장에 대한 전수조사 결과 부적합 판정을 받은 농장49개소 가운데 31개소가 친환경 인증 농장으로 밝혀졌다. 살충제 계란 농장의 66%가 일반 농가도 아닌 친환경인증 농가라는 사실은 우리 국민뿐만 아니라 그동안 친환경 계란을 믿고 먹었던 소비자를 경악케 했다.    

게다가 살충제 친환경인증에 농피아가 개입된 것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국회에서 관피아를 척결하라고 수없이 지적을 했음에도 농식품부는 전혀 개의치 않은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김한정 의원에 따르면 살충제 성분이 검출된 친환경인증 농장 31곳에 친환경인증을 해준 9곳의 업체에 '농피아'의 절반인 40명이 취업했고, 전체 친환경인증기관 64곳 가운데 31개 업체에 모두 80명의 퇴직 공무원이 재취업했다고 한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살충제 계란의 원인은 농피아라고 한다. 그렇다면 농피아만 막으면 될까?이 총리의 지적은 틀린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볼 때 더 근본적인 원인은 관료주의의 폐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관료주의의 폐단이란 게 뭔가? 법률 만능주의와 선례답습에 따른 비현실적인 정책, 정년 보장에 따른 무사안일한 복지부동이 대표적이다. 게다가 짧게는 1년 길어도 2-3년이면 자리를 옮기기 때문에 전문성과 책임성도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도 빼놓을 수 없다. 

문제가 터지면 그 문제만 해결하기에 급급하고,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는 덮고 넘어가는 경우는 흔하지 않게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계란은 살충제만 문제될까? 계란을 유통시키는 가운데 계란의 선도와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 문제는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정부의 대책이 요구되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분명 나중에 문제가 터져야만 대응하려 할 것이다.    
이번 살충제 계란 파동으로 관료제 폐단을 개선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책임의 한계를 분명히 하고 잘못이 있다면 엄격한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번 계란 살충제 파동과 같은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에는 승진과 정년에 있어서도 불이익을 줄 수 있는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 

친환경인증 문제를 단순히 농피아 문제로만 몰고 가는 것도 관료제의 폐단을 그대로 보여준다. 고름이 생긴 환부만 도려내고, 언제든지 고름으로 변할 수 있는 부위는 가만히 뒀다가 나중에 고름이 되면 도려내려는 태도는 대표적인 관료제의 폐단이다. 생각해보자. 농피아뿐인가? 해피아가 있고, 전 부처에 관피아는 이루 말할 수 없다. 국정감사 때만 되면 항상 지적된 문제다. 하지만 어떤가?       
   
이번 정기국회 국정감사 기간에도 각 의원실에서는 관피아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를 쏟아낼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이낙연 총리는 거시적으로는 관료제의 폐습을 없앨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고, 미시적으로는 농피아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이번 기회에 모든 관피아를 뿌리 뽑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렇지 않으면 관피아로 인한 또 다른 유형의 사고는 재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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